柳器善納[유기선납]
유기를 잘 납부하다.
琴齋李長坤[금재이장곤]
燕山朝文科校理[연산조문과교리]
被燕山之疑[피연산지의]
更爲發捕故[갱위발포고]
逃入咸興[도입함흥]行路[행로]
渴甚[갈심]井邊[정변]
有汲水處女,[유급수처녀]]
求飮一瓢[구음일표]
금재 이장곤이
연산조의 문과 교리였는데,
연산의 의심을 받다가
다시 붙잡히게 되겠기에
도망하여 함흥에 들어가는데
가는 길에 갈증이 심하여
우물 가에 물을 긷는 처녀가 있어
한 표주박의 물을 달라고 하니
則其女擧匏盛水後
[즉기녀거포성수후]
摘取柳葉[적취류엽]
浮水而給[부수이급]
怪而問其由[괴이문기유]
女曰[여왈]:
"渴甚急飮[갈심급음]
恐生病氣浮柳葉[공생병기부류엽]
使之緩飮[사지완음]."
長坤驚異問曰[장곤경리문왈]:
"爾誰家女耶[이수가여야]?"
對曰[대왈];
"越便柳匠家女也[월편류장가냐야].”
그 처녀가 바가지에
물을 담은 후에
버들잎을 따서 물에 띄어 주거늘
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으니,
처녀가 말하기를,
"갈증이 심하여 급히 마시면
체할까 두려워 버들잎을 띄워
천천히 마시게 한 것입니다."하니,
장곤이 놀라 이상해서 묻기를,
"너는 어느 집 딸이냐?"하니,
대답하기를,
"건너편의 유기장 집의
딸입니다."하여,
隨往其家[수왕기가]
爲婿托身[위서탁신]
以若京華貴客[위약경화귀객]
那知柳器織造乎[나지류기직조호]
但以日日晝寢爲事
[단이일일주침위사]
柳匠夫妻怒罵曰[유장부처노매왈];
"吾之迎婿[오지영서]
爲助柳器役[위조류기역]
但喫朝夕飯[단끽조석반]
晝夜昏睡[주야혼수]
卽一飯囊也[즉일반낭야]."
따라가 그 집에 가서
사위가 되어 몸을 의탁하니,
서울의 귀한 나그네로
어찌 유기를 만들 줄 알리오.
다만 나날이 낮잠 자기로
일을 삼거늘,
유기장 부부가 노하여 꾸짖기를
"우리가 사위를 맞이함은
유기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다만 아침저녁으로 밥만 먹고
밤낮으로 잠만 자니,
곧 한 밥 주머니이로다."하고,
自後朝夕飯半減[자후조석반반감]
其妻憐之[기처련지]
每以鍋底[매이과자]
黃飯加饋,[황반가궤]
如是度了數年[여시도료수년].
中宗改玉[중종개옥]
昏朝得罪之人[혼조득죄지인]
幷赦之[병사지]
還付李長坤之官職
[환부이장곤지관직]
行會八道尋訪[행화팔도심방]
傳說藉藉[전설자자].
이로부터 아침저녁 밥을
반으로 줄이니
그 아내가 불쌍히 여겨,
매양 솥 밑의
누룽지를 더 먹게 하며
수년의 세월이 흘러갔었다.
중종이 반정되면서
지난 어두운 조정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을
아울러 용서하며
이장곤의 관직을 복직시키려
팔도 방백에게 찾으라 하시니
전하는 말이 자자하였다.
改玉[개옥] : 갈아 바꾼다는 뜻,
나쁜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우는 일을 이르는 말.
長坤略聞風便[장곤략문풍편]
謂婦翁曰[위부옹왈]:
"今番官家[금번관가]
朔納柳器[삭납류기]
吾當輸納矣[오당수납의]."
翁曰[옹왈]:
"如君[여군]渴睡漢[갈수한]
不知東西[부지동서]
何上納於官家[하상납어관가]
以吾親納[이오친납]
每每[매매]見退矣[견퇴의]
不當之說勿爲之[부당지설물위지]."
장곤이 소문을 대략 듣고
장인 장모에게 말하기를
"이번 관가에
다달이 바치는 유기는
제가 가져다 바치겠습니다."하니
장인이 말하기를
"자네처럼 잠에 빠진 사람은
동서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관가에 상납하겠는가?
내가 친히 납부하더라도
매양 퇴자를 당하는데
당치도 않은 말은 하지도 말게."하니
渴睡漢[갈수한]; 잠에
목말라 하는 사람.
其妻曰[기처왈]: "可試送[가시송]"
翁始許之[옹시허지]
長坤背負柳器[장곤배부류기]
直入官庭後[직입관정후]
高聲曰[고성왈]:
"某處柳器匠[모처류기장]
朔納次來待[삭납차래대]."
本官長坤之素親武辯也
[본관장곤지소친무변야]
見其容貌[견기용모]
大驚下階[대경하계],
장모가 말하기를
"시험 삼아 보내봅시다."하여
장인이 비로소 허락하여
장곤이 유기를 등에 지고,
바로 관청 뜰에 들어간 후에
큰 소리로 말하기를
아무 곳의 유기장이
삭납차 와서 기다립니다."하니,
본관 사또는 장곤과
평소에 친한 사이라
그의 용모를 보고,
크게 놀라 섬돌 아래로 내려와,
執手上座曰[집수상좌왈]:
"公何處晦迹[공하처회적]
以此樣而來乎[이차양이래호]?
朝廷搜訪已久조정수방이구]."
仍進酒饌及衣冠[잉진주찬급의관]
李曰[이왈]:
"負罪之人[부죄지인]
托身匠家[탁신장가]
偸生延命[투생연명]
不意更見天日矣[불의걍견천일의]."
손을 잡고 자리에 오르게 한 후에
말하기를,
"공은 어는 곳에 자취를 숨겼다가
이런 모양으로 오십니까?
조정에서 찾은 지 이미 오래됩니다."
하며,
이에 술과 반찬 및 의관을 주니,
이장곤이 말하기를
"죄를 입은 사람이,
몸을 유기장의 집에 의탁하여
목숨을 이어 오다가
뜻밖에 다시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되었소."하니,
本官急報巡營[본관급보순영]
卽發馹騎而促上京
[즉발일기이촉상경]
長坤曰[장곤왈]:
"柳匠家[유가장]
爲三年主客故[위삼년주객고]
誼不可不顧[의불가불고]
兼有糟糠之義[겸유조강지의]
今出往告別[금출왕고별]
望君明朝訪我[망군명조방아]."
본관이 급히 감영에 보고하여,
곧 역말을 타고
상경할 것을 재촉하니
장곤이 말하기를
"유기장의 집에 삼년 동안
주인과 손님으로 있었으니
마땅히 돌아가 보지 않을 수 없소.
겸하여 조강의 의가 있으니
이제 나아가서 이별을 할 것이니
바라건대 그대는 내일 아침에
나를 찾아오시오."하고,
李卽歸柳匠家[이즉귀류장가]
言曰[언왈]:
今番柳器[금번류기]
無事上納[무사상납]."
翁曰[옹왈]:
"異哉[이재]古語云[고어운]
鴟老千年[치로천년]
能搏一雉,[능박일치]
此非虛語也[차비허어야]
今夕飯加給一匙[금석반가급일시]."
翌朝[익조]平明[평명]
長坤早起[장곤조기]
洒掃庭除[쇄소정제]
이장곤이 곧 유기장의 집에 돌아가
말하기를
"이번 유기는 무사히 상납했습니다"
하니, 장인 말하기를
"이상 하도다, 옛말에
솔개가 늙어 천 년이 되면
능히 꿩 한 마리를 잡는다더니
이것이 헛된 말이 아니로다.
오늘 저녁 밥을
한 숟갈 더 주어라."하였다.
이튿날 아침 해 뜰 녘에
장곤이 일찍 일어나
물 뿌리고 뜰과 섬돌을 쓰니,
翁曰[옹왈]:
"吾婿[오서]昨日[작일]善納[선납]
今朝又掃門庭[금조우소문]
則今日[즉금일]
乃日出於西也[내일출어서야]."
長坤庭舖蒿席[장곤정포호석]
翁曰[옹왈]:
"何以舖席耶[가이포석야]?"
曰[왈]: "今日[금일]
官司主當行次矣[관사주당행차의]."
장인이 말하기를
"우리 사위가
어제는 유기를 잘 납부하고
오늘 아침에는 문과 들을 청소하니,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하니,
장곤이 뜰에 깔 멍석을 달라하니
장인이 말하기를
"어째서 멍석을 깔려는거냐?"하니,
말하기를, "오늘 사또가
우리 집에 행차할 겁니다."하니,
翁冷笑曰[옹냉소왈]:
"君莫作夢中說[군막작몽중설]
官司主豈有吾家[관사주기유오가]
行次之理乎[행차지리호]
到今思之[지금사지]昨日[작일]
以柳器善納之事[이류기선납지사]
必委於路上歸家[필위어로상귀가]
虛張聲言也[허장성언야]?"
言未畢[언미필]
本府上吏持彩席[본부상사대채석]
장인이 냉소하며 말하기를
"자네는 꿈속 같은 말을 하지 말게
사또가 어찌 우리 집에
행차할 이치가 있겠는가?
이제 생각해보니
어제, 유기를 잘 바친 일도
반드시 길가에 버리고 와서
헛되이 큰소리만 친 것이 아닌가?"
하며, 말을 끝맺기도 전에
본부의 관리가 꽃자리를 가지고,
喘喘而來舖於房中曰
[천천이래포어방중왈]:
"官司主行次[관사주행차]
方今到來[방금래도]."
柳匠夫妻[유장부처]
蒼黃失色[창황실색]
避匿籬間,[피익리간]
少焉前導聲及門[소언전도성급문]
本官到[본관도]
而敍寒暄後[이서한훤후]
헐떡거리며 와서
방 가운데 펴며 말하기를
"사또의 행차가
방금 이르렀습니다."하니,
유기장의 부부가
허둥지둥 놀라 얼굴 빛이 변하여
울타리 사이에 피하여 숨었는데
조금 있자
앞을 인도하는 소리가
대문에 들리고
사또가 당도하여
인사를 나눈 후에
仍問曰[잉간왈]:
"嫂氏何在[수씨하재]?
請行相見禮[청행상견례]."
長坤喚妻出拜[장곤환처출배]
衣裳雖襤褸[의상수남루]
儀容甚安閒[의용심안한]
無常賤女子之態[무상천녀자지태]
묻기를
"아주머니는 어디 계시오?
상견례를 행하고자 합니다."하니,
장곤이 아내를 불러 나와
절하게 하니
옷은 비록 남루하나
거동과 모양이 아주 안한하여
상스러운 천한 여인의
모습이 없는지라,
本官致敬曰[본관치경왈]:
"李學士在於窮途[이학사재어궁도]
以嫂氏力[이수씨력]
得在於此[득재어차]
雖義氣男子[수의기남자]
無過於此[무과어차]."
命招柳匠[명초류장]
饋酒賜顔[궤주사안]
隣邑守令[인읍수령]
絡繹來見而監司[낙역래견이감사]
送幕客傳喝[송막객전갈]
柳匠門外[유장문외]
人馬熱鬧[인마열뇨]
觀光者如堵[관광자여장].
사또가 공경하여 말하기를
이학사가 어려운 처지에 계실 때
아주머니의 힘으로
이에 이르게 되셨으니
비록 의기의 남자라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며, 유기장을 불러오라 명하고
술을 먹게 하고
사또를 뵙도록 하고
이웃 읍의 수령이
연이어 와서 보자
사또가 막객을 보내어 전갈하니,
유기장의 집 문밖에
사람과 말이 떠들썩하며
구경하는 사람이
담처럼 둘러서 있었다.
長坤謂本官曰[장곤위본관왈]:
"彼雖常賤[피수상천]
吾旣適體[오기적례]
棄之不可[기지불가]
願借一轎偕行[원차일교해행]
本官如其言[본관여기언]
長坤上京謝恩[장곤상경사은]
則上俯詢[즉상부순]
流離之顚末[유리지전말]
장곤이 사또에게 말하기를
"저들이 비록 상사람이고 천하나
내가 이미 그에게 몸을 의탁했기에
버릴 수 없으니
원컨대 교자 하나를 빌려
함께 가겠소."하니
사또가 그 말대로 해서
장곤은 상경해서 임금께 사은하자
임금께서 장곤이 떠돌아다니던
전후의 이야기를 묻자,
長坤具奏其事[장곤구주기사]
上再三[상재삼]嗟歎曰[차탄왈]:
"如此女子[여차여자]
不可以賤妾待之[불가지천첩대지]"
特陞差後夫人[특승차후부인].
장곤이 그 일을 모두 아뢰니
임금께서 여러번 차탄하시며
말하기를
"이와 같은 여자는 천한 첩으로
대우할 수 없도다."하시고,
특히 후부인으로 승차시켰다.
문신이자 학자로 중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琴軒[금헌] 李長坤[이장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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