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겨울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돌지둥[宋錫周] 2023. 1. 18. 12:43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李荇[이행]

어느 곳인들 술 잊기 어렵네.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 어느 곳에선들 술 잊기 어려운데 
蠻天風雨辰[만천풍우신] : 거친 하늘은 비 바람에 흔들리네. 
浮休萬里夢[부휴만리몽] : 덧 없이 쉬려니 만리 밖 꿈속이요 
寂寞百年身[적막백년신] : 적막하고 쓸쓸한 백 년의 몸이네. 
鬱鬱披襟倦[울울피금권] : 울울한 가슴을 헤치기 게으르고  
沈沈抱膝頻[침침포슬빈] : 침울하게 숨어 무릎 자주 껴안네.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 이러한 때에 한 잔의 술이 없으니 
華髮坐來新[화발좌래신] : 흰 머리털 새로 돌아와 머무르네. 

 

鬱鬱[울울] : 마음이 펴이지 않고 답답함.

 

容齋先生集卷之六[용재선생집6권] 海島錄[해도록]

正德丙寅春二月[정덕병인춘이월]赴巨濟以後作[부거제이후작]

正德[정덕] 병인(1506)년 봄 2월, 거제도로 귀양 간 이후 짓다.

李荇[이행,1478-1534] : 자는 擇之[택지], 호는 容齋[용재]

우찬성,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행은 1504년에 사간원 헌납을 거쳐 홍문관 응교가 된다.

이 해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를 왕후로 추숭하자는 논의가 일고

성종 때 여러 사건으로 인해 廢庶人[폐서인]인이 된 윤씨를

연산군은 등극 후 왕후로 추숭하려 했으며

모친의 원통함과 관련된 이들을 탄압했습니다.

이른바 甲子士禍[갑자사화] 사건.

이행은 윤씨의 추숭에 반대하다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유배에 오르게 된다.

 

   1504년 4월 杖刑[장형]을 맞고

충주로 유배되었고,

그해 6월 벗 朴誾[박은]이

참수를 당하며 박은과 절친하다는 이유로

또 다시 장형을 받고 노역에 충원되었습니다.

9월에는 거의 죽을 때까지 모진 고문을 받았고,

12월에는 다행히 사형을 면하였지만,

또 장형을 맞고 함안군의 관노로 배속되었지요.

1505년 가을에는 匿名[익명]의 글로 인해

또 옥사가 일어나 고문을 받으며 겨울을 보냈고,

이듬해인 1506년 거제도로 移配[이배],

그해 2월에 거제에 도착해 위리안치되었습니다.

거제에 도달했을 때가 그의 나이 29세였는데

젊은 나이지만 누차 장을 맞고 고문을 당하며

귀양지를 옮겨 다녔으니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었지요.

 

   그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엘리트가 거친다는 홍문관 관원에서

한순간 죄인으로 전락하여

남쪽 끝으로 쫓겨난 처지,

장형과 고문을 또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기약 없는 유배지에서의 막연함.

이 모든 것이 그를 괴롭게 했을 것이지요 .

어느 날 거친 비바람과 함께

절망과 좌절이 엄습하자

그는 한 잔 술로 이를 이겨내려 하였겠지요.

그에게 음주란 곧 절망적 상황에서

삶을 부지하려는 생의 노력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이 시의 ‘何處難忘酒’를
"도저히 술이 없으면 안 되는 순간"이라

번역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이후에 이행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해 가을 서울로 압송하여

죽을 때까지 곤장을 치라는 명이 내려와

상경하는 도중에 기적적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사면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조정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지내며 우의정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1531년(중종27)

金安老[김안로] 일당을 탄핵하다가

그의 일당에게 도리어 탄핵을 받아

1532년 평안도 함종으로 유배 갔다가

2년 뒤 그곳에서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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