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金三宜堂[김삼의당]

돌지둥[宋錫周] 2015. 1. 19. 08:25

 

 

       三宜堂 金氏[삼의당 김씨] 

 

삼의당 김씨는 영조 45년에 전라남도 남원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에,

같은 해에, 같은 날 출생한  樂堂[담락당] 河砬[하립 :1769∼1830]과

정조10년[1786] 봄날 남원의 교룡방 언덕에서 결홉합니다.

삼의당 김씨는 몰락한 士族[사족]의 후예로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한글로 된 小學[소학]을 읽고 문자를 배워

諸子百家[제자백가]를 대충 섭렵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글공부에 노력하여 혼인하기 전에 규방의 법도를 익혀 부덕을 고루 갖추고

문학에도 상당한 재능과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네요.

남편 하립과 삼의당 김씨가 첫날밤에 나눈 대화 중에는 둘의 사랑읗 화답하는 시와 아울러 

"立身揚名[입신양명]하여 부모를 顯達[현달]하는 것이 가장 큰 孝[효]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고,

어버이께 효도하는 방법으로 임금님께 충성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라고 삼의당 김씨가 충고 하였다 합니다.


입신양명은 신랑 하립의 부모가 절실히 바라는 바였으며

이것은 또한 명색뿐인 양반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몇 대에 걸쳐 과거급제자가 하나도 없는

몰락한 집안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기도 하였으리라.

 

짧은 신혼생활을 접고, 하립은 곧 山寺[산사]로 과거 공부를 하러 가고

18살의 새색시 삼의당 김씨는  딸을 낳아 딸이 16살이 될 때 까지,

과거준비와 응시로 생이별이나 다름없는 독수공방이 시작되었지요.

삼의당 김씨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그녀 스스로 그 길을 기꺼이 원하였고

양반집 규수이기는 하나, 완전 몰락한 무늬만 사대부가에 가세가 궁핍하니,

몸소 밥 짓고, 길쌈하고, 밭일까지 직접해야하는 처지였지요.

남편 하립의 과거 준비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머리털을 자르기도 하고,

비녀를 팔기까지 하였으나 남편은 여러 번 과거에 실패하고, 결국에는

과거를 포기하고 낙향한 후 고향인 남원을 떠나 진안으로 이사를 하였답니다.

 

난설헌 허초희, 부안기녀 이매창, 송도의 황진이, 서녀소실 이옥봉 등의 독수공방과

삼의당 김씨의 독수공방이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삼의당 김씨는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농사일을 하면서 글을 쓴 여인으로 

시작품은 111편 253수에 이르고 이는 다른 어느 여성시인보다도 많은 작품이며

시의 소재는 주로 부부간의 사랑과, 청빈낙도, 전원생활, 자연사랑,

남녀간의 사랑과 남편 하립에게 올린 권학가 등을 그렸답니다.

 

죽은 해는 알 수 없으나 6월 20일에 죽었다고 하며,

묘는 진안 백운면 덕현리에 그 남편과 함께 쌍봉장으로 하였다네요.

진안 마이산 탑영지에는  湛樂堂河砬三宜堂金氏夫婦詩碑[담락당하립삼의당김씨부부시비]가 있고

문집으로는 三宜堂稿[삼의당고] 2권이 1930년에 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시 99편과 19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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