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借冊爲枕[차책위침]

돌지둥[宋錫周] 2021. 7. 31. 12:33

借冊爲枕[차책위침]

책을 빌려 베개를 삼다.

 

옛날 한 생원이

여러 사람과 더불어,

*북한산 가을 경치의

*구경길을 가다가,

남대문 안에서,

한 중을 만나니,

생원이 묻기를,

“너는 어느 절에 있느냐?”

하니,

중이 말하기를,

“소승은 태고사에 있습니다.”하니,

古一生員與數人[고일생원여수인]

作北漢賞秋之行[작북한상추지행]

於南大門內[어남대문내]

逢一僧[봉일승]

生員問曰[생원문왈]

“汝在何寺[여재하사]?”

僧曰[승왈]

“小僧在太古寺矣.”

*[소승재태고사의]

 

생원이 말하기를,

“너의 절에 어떤

볼 만한 서적이 있지 않느냐?”

하니,

生員曰[생원왈]

“汝寺有何可觀書籍否

여사유하가관서적부]”

 

중이 말하기를, 

“별로 볼 만한 책이 없으나, 

*다만 강목 한 질이 

전해 오는 것이 있습니다.”하니,

僧曰[승왈]

“別無可觀[별무가관]

只有綱目一帙傳來者矣

[지유강목일질전래자의]”

 

생원이 매우 좋아하며 말하길

“내가 바야흐로 

그것을 보고자 하니, 

네가 가서 예닐곱 책을 빌려 

*중흥사로 오거라. 

나는 의당 이곳에서 묵겠다.”한즉, 

生員甚好曰[생원심호왈]

“吾方欲見之[오방욕견지]

汝卽往借六七冊而

[여즉왕차륙칠책이]

來于重興寺[내어중흥사].

吾當宿於此矣[오당숙어차의].” 

 

중이 곧 본절로 돌아가서,

생원이 책을 빌려달라는 일로,

주지승에게 말하니,

주지승이 말하기를,

“양반이 보고자 한 바에는,

또한 가지고 가서 본 뒤에,

찾아옴이 가하리라.”하니,

僧卽歸本寺[승즉귀본사]

以生員借冊事[이생원차책사]

言于主僧[언우주승]

僧曰[승왈]

“兩班旣欲借見[양반기욕차견]

旣爲持[기위지거]

覽後推來可矣[남후추래가의].” 

 

 

중이 이에 일곱 권의 책을,

중흥사로 가지고 가니,

날이 이미 컴컴해지고 있었는데,

생원이 그를 보고 기뻐 가로대,

“너는 과연 신의가 있구나.”하니,

중이 말하기를,

“생원님의 분부를 감

히 어길 수 없어

가지고 왔습니다만,

이제 밤이 되었으니,

어찌 보시겠습니까?”하니,

僧乃以七卷書[승내이칠권서]

持來于重興寺則[지래우중흥사즉]

日已迫曛矣[일이박훈의]

生員見之喜曰[생원견지희왈]

“汝果有信矣[여과유신의]”

僧曰[승왈]

“生員主分付不敢違越持來而

[생원주분부불감위월지래이]

今以犯夜[금이범야]

何以覽耶[하이람야]?”

 

 

생원이 말하기를,

“노인이 절에 들어

묵을 것을 헤아리니,

목침에는 불편하겠는 고로,

이 책을 빌려

하룻밤 편안히 베고 자고자 하니,

내일 아침에

도로 가지고 감이 좋겠다.”하니,

중과 여러 사람들이

배를 움켜잡고 웃더라.

生員曰[생원왈]

“老人入寺支宿[노인입사지숙]

於木枕爲不便故[어목침위불편고]

欲借此以爲一夜穩便枕宿

[욕차차이위일야온편침숙]

明朝還持去好矣[명지환지거호의]”

僧與諸人捧腹[승여제인봉복].

 

등신 말이나 말던지

양반 체면 제대로 구기네.

 

*北漢山[북한산] :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 경계에 있는 산

  남서쪽 비봉 기슭에는

  유서 깊은 사찰인 승가사와

  조선시대 궁중사찰이며

  경치가 뛰어난 화계사를 비롯해

  태고사, 도선사, 원효암

  등의 사찰이 있다.

 

*賞秋之行[상추지행] : 가을 단풍을

  즐기려 가는 산행.

 

*太古寺[태고사] : 경기도 고양시

  북한동 북한산성에 있는 절.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1341년 普愚[보우]가

  重興寺[중흥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東庵[동암]이라는

  개인의 수도처로 창건한 것.

 

*綱目[강목] : 중국 宋代[송대]의

  史書[사서]로〈통감강목〉이라 한다.

  전부59권으로 되어 있다.

 

*中興寺[중흥사] : 삼각산 서남쪽

  노적봉 아래 중흥동에 있는 절로

  고려시대이래 있었던 절인데

  황폐된 것을 고려 말기에

  태고화상 보우가 중창한 것이다.

  1904년 8월 원인모를 화재와

  1915년 대홍수로 인하여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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