借冊爲枕[차책위침]
책을 빌려 베개를 삼다.
옛날 한 생원이
여러 사람과 더불어,
*북한산 가을 경치의
*구경길을 가다가,
남대문 안에서,
한 중을 만나니,
생원이 묻기를,
“너는 어느 절에 있느냐?”
하니,
중이 말하기를,
“소승은 태고사에 있습니다.”하니,
古一生員與數人[고일생원여수인]
作北漢賞秋之行[작북한상추지행]
於南大門內[어남대문내]
逢一僧[봉일승]
生員問曰[생원문왈]
“汝在何寺[여재하사]?”
僧曰[승왈]
“小僧在太古寺矣.”
*[소승재태고사의]
생원이 말하기를,
“너의 절에 어떤
볼 만한 서적이 있지 않느냐?”
하니,
生員曰[생원왈]
“汝寺有何可觀書籍否
여사유하가관서적부]”
중이 말하기를,
“별로 볼 만한 책이 없으나,
*다만 강목 한 질이
전해 오는 것이 있습니다.”하니,
僧曰[승왈]
“別無可觀[별무가관]
只有綱目一帙傳來者矣
[지유강목일질전래자의]”
생원이 매우 좋아하며 말하길
“내가 바야흐로
그것을 보고자 하니,
네가 가서 예닐곱 책을 빌려
*중흥사로 오거라.
나는 의당 이곳에서 묵겠다.”한즉,
生員甚好曰[생원심호왈]
“吾方欲見之[오방욕견지]
汝卽往借六七冊而
[여즉왕차륙칠책이]
來于重興寺[내어중흥사].
吾當宿於此矣[오당숙어차의].”
중이 곧 본절로 돌아가서,
생원이 책을 빌려달라는 일로,
주지승에게 말하니,
주지승이 말하기를,
“양반이 보고자 한 바에는,
또한 가지고 가서 본 뒤에,
찾아옴이 가하리라.”하니,
僧卽歸本寺[승즉귀본사]
以生員借冊事[이생원차책사]
言于主僧[언우주승]
僧曰[승왈]
“兩班旣欲借見[양반기욕차견]
旣爲持[기위지거]
覽後推來可矣[남후추래가의].”
중이 이에 일곱 권의 책을,
중흥사로 가지고 가니,
날이 이미 컴컴해지고 있었는데,
생원이 그를 보고 기뻐 가로대,
“너는 과연 신의가 있구나.”하니,
중이 말하기를,
“생원님의 분부를 감
히 어길 수 없어
가지고 왔습니다만,
이제 밤이 되었으니,
어찌 보시겠습니까?”하니,
僧乃以七卷書[승내이칠권서]
持來于重興寺則[지래우중흥사즉]
日已迫曛矣[일이박훈의]
生員見之喜曰[생원견지희왈]
“汝果有信矣[여과유신의]”
僧曰[승왈]
“生員主分付不敢違越持來而
[생원주분부불감위월지래이]
今以犯夜[금이범야]
何以覽耶[하이람야]?”
생원이 말하기를,
“노인이 절에 들어
묵을 것을 헤아리니,
목침에는 불편하겠는 고로,
이 책을 빌려
하룻밤 편안히 베고 자고자 하니,
내일 아침에
도로 가지고 감이 좋겠다.”하니,
중과 여러 사람들이
배를 움켜잡고 웃더라.
生員曰[생원왈]
“老人入寺支宿[노인입사지숙]
於木枕爲不便故[어목침위불편고]
欲借此以爲一夜穩便枕宿
[욕차차이위일야온편침숙]
明朝還持去好矣[명지환지거호의]”
僧與諸人捧腹[승여제인봉복].
등신 말이나 말던지
양반 체면 제대로 구기네.
*北漢山[북한산] :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 경계에 있는 산
남서쪽 비봉 기슭에는
유서 깊은 사찰인 승가사와
조선시대 궁중사찰이며
경치가 뛰어난 화계사를 비롯해
태고사, 도선사, 원효암
등의 사찰이 있다.
*賞秋之行[상추지행] : 가을 단풍을
즐기려 가는 산행.
*太古寺[태고사] : 경기도 고양시
북한동 북한산성에 있는 절.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1341년 普愚[보우]가
重興寺[중흥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東庵[동암]이라는
개인의 수도처로 창건한 것.
*綱目[강목] : 중국 宋代[송대]의
史書[사서]로〈통감강목〉이라 한다.
전부59권으로 되어 있다.
*中興寺[중흥사] : 삼각산 서남쪽
노적봉 아래 중흥동에 있는 절로
고려시대이래 있었던 절인데
황폐된 것을 고려 말기에
태고화상 보우가 중창한 것이다.
1904년 8월 원인모를 화재와
1915년 대홍수로 인하여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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