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踰鐵嶺[유철령]

돌지둥[宋錫周] 2023. 9. 15. 07:15

踰鐵嶺[유철령]    南龍翼[남용익]

철령을 넘으며

 

南窮桑域北燕都[남궁상역북연도] : 남쪽엔 부상이요 북쪽으로는 연경 도읍인데

鐵嶺邊關獨未踰[철령변관독미유] : 철령의 변방 관문을 홀로 아직 넘지를 못했네.

聖世愚臣投絶塞[성세우신투절새] : 태평 성대 우매한 신하 막다른 변방에 던져져

饕風虐雪陟危途[도풍학설척위도] : 사나운 바람 모진 눈속에 위태한 길로 오르네.

邠郊入地深如海[빈교입지심여해] : 빈주의 들판 대지에 드니 바다와 같이 깊은데

蜀棧連天別作區[촉잔련천별작구] : 촉의 잔도 하늘 잇닿아 구역을 특별히 지었네.

却憶沙翁歌一曲[각억사옹가일곡] : 도리어 백사옹의 노래 한 곡을 생각하노니

宿雲能帶淚歸無[숙운능대루귀무] : 자던 구름은 능히 두르고 눈물 없이 돌아가네.

 

鐵嶺[철령] : 함경남도 安邊郡[안변군]과 강원도 淮陽郡[회양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

桑域[상역] : 桑[부상]이 있는 지역, 우리 나라 또는 동쪽 바다.

聖世[성세] :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세상, 그 시대.

邠郊[빈교] : 조선 창업의 터전,

   周[주]나라 창업의 始祖[시조]인 太王[태왕]이 邠[빈] 땅에서 살았던데서 이름.

沙翁[사옹] : 백사 이항복이 1618년 북청부로 귀양감, "철령 높은 봉에 자고가는 저 구름아"

 

 

 

萬里投荒死亦甘[만리투황사역감] : 만리에 거칠게 던져졌으니 죽음 또한 달게여기고

深冤未暴痛何堪[심원미폭통하감] : 억울함 감추고 나타내지 않으니 고통 어찌 견디나.

憂因識字蘭均檜[우인식자란운회] : 난과 회나무의 운과 글자 앎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兆已徵詩鬼似藍[조이징시귀사람] : 조짐은 이미 시로 밝혔으니 남관 같은 귀문관이네.

誰抱濕薪燔凍雉[수포습신번동치] : 누가 젖은 땔나무 가지고 얼어붙은 꿩을 구울까 ?

且將枯草秣羸驂[차장고초말리참] : 또한 장차 마른 잡초로 파리하게 마른 곁마 먹이네.

秦京消息從玆斷[진경소식종자단] : 진경(서울)의 소식은 지금으로부터는 끊어지리니

月旣更新道改三[월기갱신도개삼] : 세월은 이미 새롭게 바꾸며 세개의 도를 바꾸었네.

余以敎文中夢蘭字[여이교문중몽란자] 待罪鬼門一絶[대죄귀문일절]是余夢作[시여몽작]

나의 교문 가운데 몽란이란 글자에 귀문 한구절로 처벌을 기다리며 나의 꿈속에 짓다.

 

 

제목 겸 서문

辛未十月十七日[신미10월17일]臺啓果發[대계과발]

二十日[이십일]待命于東門外[대명우동문외]

當日[당일]蒙允遠竄咸鏡道明川府[몽윤원찬함경도명천부]

二十二日[이십이일]發程[발정]十一月十七日[11월17일]到配所[도배소]

신미(1691)년 10월 17일 사헌부의 계사 결과가 드러나

20일 동문 밖에서 명을 기다려
당일에 임금의 윤허로 멀리 함경도 명천부로 귀양감에

22일 길을 나서 11월 17일 배소에 도착했다. 

 

蒙允[몽윤] : 임금께 상소하여 하가를 받음.

遠竄[원찬] : 遠配[원배], 먼 곳으로 귀양보냄.

 

壺谷集卷之四[호곡집4권]  七言律詩[칠언율시]

南龍翼[남용익,1628-1692] : 자는 雲卿[운경], 호는 壺谷[호곡]

  좌참찬,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1689년 昭儀 張氏[소의 장씨]가 왕자를 낳아 숙종이 그를 원자로 삼으려 하자,

  여기에 극언으로 반대하다가 명천으로 유배되어 3년 뒤 그곳에서 죽었다.

 

남용익이 1691년(숙종17) 10월에

함경도 明川[명천]으로 유배 가는 길에

철령을 넘으며 남긴 작품.

 

남용익은 숙종 대 西人[서인]의 핵심인물로

숙종 기사년(1689, 숙종15)에
후궁 昭儀[소의] 張氏[장씨, 장희빈)] 소생을
元子[원자, 훗날의 경종]로 定號[정호]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을 축출하고 南人[남인]이 집권한 己巳換局[기사환국]이 일어났다.

남용익은 전에 대제학 때 지어 올렸던 頒敎文[반교문]이 문제가 되어

삭탈관직을 당하고 문외출송을 당했다.

그 후 2년 동안 고향인 양주의 松山[송산]과

한강 동작진 일대를 전전하다가 결국 남인들의 공격으로

유배길에 올랐고, 이듬해인 1692년(숙종18)에

함경도 명천 유배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였다.

 

이 시에서 남용익이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잘 담아내려 공을 들인 구절은 頷聯[함련]인데,

자신의 곤액을 이전 시대의

詩讒[시참]에 빗대어 절묘하게 표현하였습니다.

詩讒[시참]관련글 소식의 글 얼마전 소개 했었지요. 

 

함련(3-4구)의 첫 구는 남용익 자신은 반교문 때문에,

송나라 蘇軾[소식]은 그가 지은

「王復秀才所居雙檜[왕복수재소거쌍회]」라는 시 때문에,

각각 유배와 좌천을 당한 동일한 처지를 말하였습니다.

‘蘭[난, 난초]’는 남용익이 반교문에 썼다가

남인에게 장희빈을 천첩으로 모욕하였다는 무함을 받은

‘蒙蘭[몽란]’ 두 글자를 뜻하고,

檜[회, 화나무]는 소식이 지은 회나무 시.

根到九泉無曲處[근도구천무곡처] :

회나무 뿌리가 구천에 이르도록 굽은 곳이 없으니,

世間唯有蟄龍知[세간유유칩룡지] :

세간에선 오직 땅속에 숨은 용만이 알리라.

라는 구절을 두고 소식의 政敵[정적]인 王珪[왕규]가

神宗[신종]의 신하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무함을 하여

소식은 黃州[황주]로 좌천되고 말았지요.

소식의 일은 송나라 신종 때의 筆禍[필화]인

‘烏臺詩案[오대시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주 일요일 게시글 참조)

 

함련의 두 번째 구는

남용익이 어릴 적에 지은 詩句[시구]와

당나라 韓愈[한유]의 조카 韓湘[한상]이 지은 시구가

각각 훗날 남용익의 유배와 한유의 좌천을

정확히 예언한 일을 말하고 있네요.

 

鬼門[귀문]은 함경도 鏡城[경성]에 있는 관문이고,

藍關[남관]은 중국 藍田縣[남전현]에 있는 관문임.

 

한유가 潮州 刺史[조주 좌사]로 좌천되기 전에

韓湘[한상]이 술법으로 모란을 피웠는데,

그 꽃잎에 작은 金字[금자]로

雲橫秦嶺家何在[운횡진령가하재] :

구름은 진령에 비껴있으니, 집은 어디쯤 있나?

雪擁藍關馬不前[설옹남관마불전] :

눈은 남관에 가득 쌓여 말이 가지 못하네.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훗날 한유가 조주로 가다가 남관에 이르러

큰 눈을 만나고서야 이전에 한상이 지은 시구가

자신의 좌천을 예언한 시구임을 깨달았다는 일화가 있다.

 

남용익의 귀문관과 관련해서는

李宜顯[이의현, 1669-1745]의

『雲陽漫錄[운양만록]』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남용익이 어렸을 적에

꿈에서 네 구를 얻었는데,

絶域逢人少[절역봉인소] :

머나먼 이역 땅에서
사람 만나는 일 적으니,

羈愁上客顔[기수상객안] :

나그네 얼굴엔

시름만 가득하여라.

 

蕭蕭十里雨[소소십리우] :

십 리 길에

쓸쓸히 비 내리는데,

夜度鬼門關[야도귀문관] :

나그네 어젯밤에

귀문관을 지나왔네.

라는 구절입니다.

남용익은 꿈에서 깨어나

괴이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귀문관은 함경도 지역으로,

남용익은 이후로도 벼슬을 하면서

함경도로 발을 들인 적이 없었고

함경도 관찰사에

首望[수망]으로 추천되었으나

落點[낙점]을 받지 못해

함경도와는 인연이 없었지요.

그러나 결국

기사환국으로 인해

함경도 명천으로 유배되었으니,

명천은 바로 귀문관

너머에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豫知夢[예지몽]

결국 어린 시절 예지몽의 시구가

말년의 불운과 정확히 맞아 떨어졌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남용익은 철령을 넘으면서

예지몽의 시구가

함경도 명천으로의 유배를

예언한 글귀임을 깨닫고는

당시의 착잡한 심정을

이 시에 담아내었습니다.

詩文[시문]에 뛰어났던

이전의 문인들이 곤액을 당한 것처럼

자신도 시문으로 당대에 명성을 떨치고

대제학까지 역임했지만,

결국 글재주가 재앙의 빌미가 되어

말년의 불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남용익은 예지몽에서 예언했던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였던 것인가.

명천 유배지에 도착한 후

깊숙이 들어앉아 독서만 하고

일체 時事[시사]에 대한 언급을 피하다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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