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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風濤[청풍도]

돌지둥[宋錫周] 2023. 3. 31. 12:14

淸風濤[청풍도]  徐駿[서준, ?-1730]

맑은 바람 물결

 

莫道螢光小[막도형광소] : 반딧불이 빛이 적다고 말하지 말라

猶懷照夜心[유회조야심] : 오히려 밤에 마음 비추어 위로하네.

淸風不識字[청풍불식자] : 맑은 바람이란 글자 알지도 못하고

何故亂飜書[하고난번서] : 무슨 까닭에 어지러히 글을 뒤짚나.

 

반딧불이 나는 밤

마음 가다듬고서

책을 읽는데

맑은 바람은

淸風[청풍]이란
글자도 모르면서

어찌 책장을 넘겨 버리는가 ?

 

그렇다고

아주 마뜩잖은 것도 아니다.

‘바람이여,

그대가 글을 읽을 줄이나

안단 말인가’라고

농담할 만큼

여유롭기까지 한다.

선비가 독서 중에

흔히 겪을 법한

단순한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그린 소품쯤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이 시는

그러나 엄청난

참화를 불러왔습니다.

 

왜 그랬을까.

누군가가

‘청풍이 글자도 모른다’는

이 시구를

청대 통치자의

무지를 풍자한 거라 해석하여

황제에게 고발한 것이지요.

한족에 비해

문화 수준이 낮다는

열등감에 시달린

만주족 통치자의 심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고자질이었습니다.

 

이에 雍正帝[옹정제]는

즉각 시인의 처결을 명령했습니다.

 

책 읽는 선비의

淸雅[청아]한 기품이

무고의 덫에 걸리는 순간

참화로 돌변해버린 것이지요.

 

청대의 야사와 일화를 다룬

'淸稗類鈔[청패류초]'에도

유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옹정제가 미복잠행하던 중

한 노점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

책갈피를 들척거렸습니다.

이를 본 시인이

'청풍은 글자도 모르면서

왜 제 멋대로

책갈피를 뒤적이는가'

라고 읊는 바람에

황제의 분노를 샀다네요.

시인이 참화를 당한

실제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詩意[시의]의

왜곡으로 빚어진 비극치고는

참으로 가혹합니다.

만주족의

문화적 콤플렉스 때문에

한족 지식인이 겪은

필화 사건은

청나라 초기에

유독 빈번했답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