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風濤[청풍도] 徐駿[서준, ?-1730]
맑은 바람 물결
莫道螢光小[막도형광소] : 반딧불이 빛이 적다고 말하지 말라
猶懷照夜心[유회조야심] : 오히려 밤에 마음 비추어 위로하네.
淸風不識字[청풍불식자] : 맑은 바람이란 글자 알지도 못하고
何故亂飜書[하고난번서] : 무슨 까닭에 어지러히 글을 뒤짚나.
반딧불이 나는 밤
마음 가다듬고서
책을 읽는데
맑은 바람은
淸風[청풍]이란
글자도 모르면서
어찌 책장을 넘겨 버리는가 ?
그렇다고
아주 마뜩잖은 것도 아니다.
‘바람이여,
그대가 글을 읽을 줄이나
안단 말인가’라고
농담할 만큼
여유롭기까지 한다.
선비가 독서 중에
흔히 겪을 법한
단순한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그린 소품쯤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이 시는
그러나 엄청난
참화를 불러왔습니다.
왜 그랬을까.
누군가가
‘청풍이 글자도 모른다’는
이 시구를
청대 통치자의
무지를 풍자한 거라 해석하여
황제에게 고발한 것이지요.
한족에 비해
문화 수준이 낮다는
열등감에 시달린
만주족 통치자의 심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고자질이었습니다.
이에 雍正帝[옹정제]는
즉각 시인의 처결을 명령했습니다.
책 읽는 선비의
淸雅[청아]한 기품이
무고의 덫에 걸리는 순간
참화로 돌변해버린 것이지요.
청대의 야사와 일화를 다룬
'淸稗類鈔[청패류초]'에도
유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옹정제가 미복잠행하던 중
한 노점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
책갈피를 들척거렸습니다.
이를 본 시인이
'청풍은 글자도 모르면서
왜 제 멋대로
책갈피를 뒤적이는가'
라고 읊는 바람에
황제의 분노를 샀다네요.
시인이 참화를 당한
실제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詩意[시의]의
왜곡으로 빚어진 비극치고는
참으로 가혹합니다.
만주족의
문화적 콤플렉스 때문에
한족 지식인이 겪은
필화 사건은
청나라 초기에
유독 빈번했답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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