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巫山一段雲[무산일단운]

돌지둥[宋錫周] 2023. 4. 26. 15:10

巫山一段雲[무산일단운]   趙孟頫[조맹부]

무산의구름 한 자락.

  

碧水澄青黛[벽수징청대] : 푸른 강물 검푸른 물감은 편안한데

危峰聳翠屏[위봉용취병] : 위태로운 봉우리 푸른 병풍 솟았네.

竹枝歌怨月三更[죽지가원월삼경] : 삼경의 달빛에 원망하는 죽지가는

別是斷腸聲[별시단장성] : 이별함에 무릇 창자 끊어지는 소리라네.

煙外黃牛峽[연외황우협] : 안개는 황우협을 벗어나는데

雲中白帝城[운중백제성] :  구름은 백제성에 가득하구나.

扁舟清夜泊萍汀[편주청야박평정] : 고요한 밤 작은 배를 부평초 물가에 멈추고

倚棹不勝情[의도불승정] : 배에 기대니 정취는 지나치지 않구나.

 

竹枝歌[죽지가] : 舜[순]임금이 남방을 순수하다가

   蒼梧野[창오야]에서 세상을 떠나자, 두 부인 娥皇[아황]과 女英[여영]이

   대나무에 피눈물을 흘리며 서러워 하다 마침내 湘水[상수]에 빠져 죽었다.

   이 후 두 여인을 상수의 신으로 받들어 湘君[상군] 혹은 湘夫人[상부인]이라고 일컫고,

   대나무에 그들의 피눈물 흔적을 상징하는 무늬가 있다고 하여 瀟湘斑竹[소상반죽]이라고 하였다.

   당시의 동정호일대에 처량하고 원망 어린 노래가 생겨났고

   이 노래가 상부인의 사정을 기념하는 것이라 하여 죽지라고 명명했다.

   ​이후 죽지는 파유지역일대에 널리 전파되어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민가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죽지라는 민가를 죽지사라는 작품양식으로 재정비하여 문단에 부각시킨 사람은

   당나라 때 劉禹錫[유우석]으로 夔州刺使[기주지사]로 좌천되어 있을 때에

   建平[건평]지역 아녀자들이 돌아가며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이것을 채집하여

   죽지사라는 새로운 노래가사를 지었다.

   후대의 많은 문인들이 유우석의 <죽지사>의 특징을 의미있게 주목하고,

   자기의 시대와 지역에 알맞게 응용하여 새로운 죽지사를 창작하였고

   마침내 문인들이 즐겨짓는 문학작품의 하나로 문단에 정착하게 되었다.  

黃牛峽[황우협] : 瞿塘峽[구당협], 巫峽[무협] 西陵峽[서릉협]의

   세 협곡을 삼협이라하는데 황우협은 서릉협중의 한협곡.

白帝城[백제성] : 무산아래 무협을끼고 서있는 높다란 옛성

   西漢[서한] 말년에 公孫述[공손술]이 사천에 할거하고 자칭 蜀王[촉왕]이라 하였다,

   이때 우물에서 흰 기운이 뻗어 하늘로 올라 간고로 그 형상이 白龍[백룡]을 닮았다 하여

   스스로 백제황제라 이르고 이곳에 도읍을 정하니 이곳의 이름이 紫陽城[자양성]이였으나

   곧 백제성으로 개명하였다. 뒷날 삼국시에 유비가 동오에 패하여 이곳으로 쫓겨 와서

   한만은 역사를 마감한다.

 

  

趙孟頫[조맹부, 1254-1322] 자는 子昂[자아],

   호는 松雪道人[송설도인] 水精宮道人[수정궁도인]

   서도의 대가. 그는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나

   특히 서법에 있어서는 전, 예, 해, 초, 어느것이던 精의 극치를 자랑하며,

   음률에 뛰어 나고, 詩文에도 능하여 松雪齋集[송설재집]을 남겼다.

   원래 송나라 종실의 후예인데 송이 망하고 은거 하였으나

   元世祖[원세조]의 부름을 거역할 수 없어 元朝[원조]에 출사하였다

   한림학사, 승지에 이르렀고 죽은 후에 위국공 을 추증 받았으며

   文敏[문민]이란 시호를 받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趙丞旨[조승지]로 부르나

   元朝[원조]에서의 벼슬살이로 늘 마음이 괴로웠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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