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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和甫至龍安微雨因寄吳氏女子[송화보지용안미우인기오씨녀자]

돌지둥[宋錫周] 2024. 5. 10. 15:27

送和甫至龍安微雨因寄吳氏女子[송화보지룡안미우인기오씨녀자]

王安石[왕안석]

용안에 이르러 화보를 전송하며 가랑로에 인하여

오씨 집안에 시집간 딸에게 시를 보내다

荒煙涼雨助人悲[황연량우조인비] : 인기척 없는 서늘한 비가 사람의 슬픔 거들고

淚染衣巾不自知[루염의건부자지] : 옷과 수건 눈물 적시는걸 스스로 알지 못하네.

除卻春風沙際綠[제각춘풍사제록] : 봄 바람이 물가 사이의 초록빛을 없애 버리니

一如看汝過江時[일여간녀과강시] : 네가 강을 건너가던 때 보던 것과 한결 같구나.

 

和甫[화보] : 완안석의 아우 王安禮[왕안례, 1034-1095]의 자, 한림학사.

荒煙[황연] : 인가가 드믊, 인기척이 없음.

 

이곳 나루터에서 벌써 두 번째 이별을 맞는다.

이번에는 동생이 벼슬하러 가는 길이니

화기애애한 환송연이 될 기회였겠지만

그러나 막상 현장에 당도해보니 황량한 풍광만 시야에 들 뿐,

‘그 옛날 모래톱 파란 풀이 봄바람에 흔들리던’ 장면과는 딴판이다.

문득 시집가는 딸과의 이별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王安石[왕안석,1021-1086]은

아들 3명과 딸 세 명을 두었는데,

큰딸과 둘째 아들은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

큰딸(실제로는 둘째 딸)이 시집가서,

친정집이 그립다고 달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시를 지어 아버지에게 올렸다.

 

그는 큰딸에게

"바쁜 낮을 보내고 잠깐 한가한 저녁에

친정집 생각날 때마다,

『능엄경』을 읽고 친정집을 잊고,

모든 인연이 꿈 같다는 것을 알고 나면,

시댁에서도 연화장 세상이 될 것"이라고 달랬다네요.

 

앞서 큰딸을 吳安持[오안지]에게 시집 보냈다.

오안지는 오충의 둘째 아들이다.

시집간 큰딸의 친정아버지 왕안석은

新法[신법]을 주도하여 강경하게 개혁하였고,

시아버지 吳充[오충, 1021-1080],

자 沖卿[충경],建州浦城[건주보성]은

신법을 반대하였기에,

큰딸이 두 집안 사이에서 입장은

말할 수 없이 곤란하였을 것입니다.

왕안석도 딸의 어려운 처지와

고통을 생각하고 달래는 시를 지어 보냈다.

오충은 1038년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1040년 국자감 直講[직강]이 되고 여러 관직을 맡았다.

희녕 9년(1076)에 왕안석이 재상에서 물러나자,

王珪[왕규, 1019-1085]와 함께 재상직을 맡아,

신종 황제에게 사마 광(1019-1086)을 불러들여

신법을 폐기하자고 요청하였다.

원풍 3년(1080)에 왕규와

蔡確[채확, 1037-1093]의 반대로 물러나고,

4월에 세상을 떠났다.

오충은 줄곧 왕안석 신법을 반대하였다.

출처 다음카페 하곡학 연구. 이경룡 발췌 수정(2023.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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