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돌지둥[宋錫周] 2014. 9. 24. 16:16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靑山裏 碧溪水]

일도창해 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一到蒼海]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明月  滿空山]

 

박연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유명한 황진이[黃眞伊]

 

명월[明月] 황진이와 벽계수[碧溪水]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기록물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 구수훈[具樹勳 : 1685-1757,영조[英祖]때의 무신]이 쓴 이순록[李旬錄]에는

 

종실 벽계수는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 왔는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벽계수를 개성으로 유인했다.

어느 달이 밝은 저녘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가 나타나

위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는 밝은 달 빛 아래 나타난 아름다운 자태와 고운 음성에 놀라

나귀에서 떨어 졌다.

 

또 다른 하나는 금계필담[錦溪筆談 : 서유영[徐有英 1801-1874]의 이야기로

 

황진이는 송도의 명기이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 그 명성이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 벽계수가 황진이 만나길 원하였으나 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하여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청하니 이달[李達]이 일러주기를

 

"소동[所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 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 올 것이니,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성공 일 것이요 "

한 즉

벽계수가 이달[李達]의 말대로 나귀타고 소동에게 거문고 들려 루에 올라 술 마시고,

거문고 한 곡 타고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뒤를 쫓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소동에게 그가 벽계수임인지 물어보고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말에서 떨어 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분은 명사가 아니라 풍류랑[風流郞]일 뿐 이라며 가 버렸다.

 

벽계수는 쪽 팔려 고개를 숙여 한스러워 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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