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慄挽[정율만]
李恒福[이항복]
정율에 대한 만사.
大抵本如寄[대저본여기] : 대체로 보아 본성은 붙여 사는것 같은데
誰將論久速[수장론구속] : 누가 문득 수명의 오래고 빠름을 논하였나.
其來卽是歸[기래즉시귀] : 마땅히 온 것은 곧 바로 돌아가는 것이니
玆理吾先燭[자리오선촉] : 이 이치를 내가 먼저 꿰뚫어 알아차렸네.
然且爲君哀[연차위군애] : 그런데도 또 그대를 위하여 슬퍼하는 건
所未能免俗[소미능면속] : 아직도 속된 습관 버리지 못한 때문이네.
有口豈復言[유구기부언] : 입이 있다지만 어찌 다시 말할 수 있으랴
有淚不敢哭[유루불감곡] : 눈물 많이 있으나 감히 울지도 못하겠네.
撫枕畏人窺[무침외인규] : 베개 어루만지며 남이 엿볼까 두려우니
呑聲潛飮泣[탄성잠음읍] : 울음 소리 삼키며 흑흑 흐느낌을 감추네.
誰持快剪刀[수지쾌전도] : 누가 날카롭게 자르는 칼을 손에 쥐고서
痛割吾心曲[통할오심곡] : 나의 심장 구석을 아프게 갈라 파헤치나.
鄭慄[정율] :1563-1590 본관은 東萊[동래].
아버지는 鄭彦信[정언신, 1527-1591], 아들은 鄭世䂓[정세규, 1583-1661].
大抵[대저] : 대체로 보아, 무릇, 대강.
飮泣[읍음] : 흑흑 흐느끼어 욺.
己丑獄事[기축옥사]에 정승 鄭彦信[정언신]이 조정에서 매를 맞고 甲山[갑산]으로 귀양을 가게 되니,
그 아들 慄[율]이 斷食[단식] 끝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때에 자칫하면 連累罪[연루죄]가 파급되므로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였고,
심지어 집안사람들이 장사조차 禮[예]대로 하지 못하였다.
白沙 李恒福은 당시에 文事郞[문사랑]이 되었던 까닭으로 그 원통함을 알고서
바야흐로 관 뚜껑을 덮을 적에 시 한 수를 지어 비밀히 관 속에 넣었는데,
집안사람들도 몰랐던 것이었다. 급기야 그 아들이 장성하자,
천장(遷葬)하게 되어 관을 열어보니, 세월이 이미 30년이 지났는데도
종이와 먹빛이 그대로 있었다 한다.
白沙先生集卷之一[백사선생집1권] 詩[시]
이항복[155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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