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裕孫[홍유손]
洪裕孫[홍유손, 1431-1529] : 자는 여경, 호는 소총·광진자
문장에 능해 당시 남양부사였던 채수가
향리의 역을 면하게 해주었다 함.
김종직의 문인이었다고 하지만 아전 출신.
세조 찬위 후 세속의 영화를 버리고,
1482년(성종 13)부터 남효온·이총·이정은·조자지 등과
모임을 갖고 죽림7현을 자처했다합니다.
노자와 장자를 논하며 술과 시로 세월을 보내 청담파로 불렸고
김수온·남효온·김시습 등과는 특히 자주 어울렸다고 하는데,
홍유손만큼 시를 지을 수 있느냐며 김시습이 서거정에게
비아냥거렸다는 말도 전한답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제주에 유배되고 노예가 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습니다.
76세에 처음으로 장가를 들어 아들을 하나 둔 뒤
명산을 편력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저서에 〈소총유고〉가 있다.
九十[90]에 아들을 얻은 處士[처사] 洪裕孫[홍유손]
篠䕺遺稿[소총유고] 附錄[부록]
遺事[유사]에 나오는 내용 중에
惠莊大王朝[혜장대왕조] 處士洪裕孫[처사홍유손] 年九十無室[년구십무실].
혜장대왕 때의 처사 홍유손은 나이 90이었는데 아내가 없었다.
爲後嗣求妻[위후사구처]
후사를 위해 처를 구했는데,
媒軀行莫不梃棒而毆之[매구행막부정봉이구지].
중신할미는 가는 곳마다 몽둥이에 얻어맞거나 구박을 받았다.
有一處子[유일처자] 謂其父母曰[위기부모왈] :
어떤 처녀가 그 부모에게 말하기를,
「雖嫁夫一日而孀[수가부일일이상],
「비록 시집가서 하루 만에 과부가 된다 할지라도,
願爲賢者妻[원위현자처].」 .
현명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고 하니,
父母許之[부모허지] 부모가 허락하였다.
裕孫九十生子[유손구십생자]名志成[명지성]
홍유손은 90세에 아들을 얻어, 이름을 지성이라고 하였는데,
博學多聞[박학다문]爲世聞人[위세문인].
박학하고 아는 것이 많아 세상에 유명하였다.
訓後進[훈후진]
達官多出其門[달관다출기문].
그는 후진을 가르쳤으며,
그 문하에서 현달한 관리가 많이 배출되었다.
至昭敬大王朝丁酉年[지소경대왕조정유년]
年近八十而終[연근팔십이종]
宣祖[선조] 때 정유년에 이르러, 나이가 거의 80이 되어 죽으니
兩世八九朝[양세팔구조]歷年殆二百載[역년태이백재]
豈不異哉[기불이재]?
두 세대가 여덟아홉 임금이 바뀌도록 거의 200년을 지냈으니,
어찌 기이 하지 않은가?
一說八十六娶[일설팔십륙취]
生二子[생이자]志成第二子云[지성제이자운].
일설에는 여든여섯에 아내를 얻어,
아들을 둘 낳았는데, 지성은 둘째 아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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