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書白沙鐵嶺歌後[서백사철령가후]

돌지둥[宋錫周] 2023. 7. 11. 19:35

書白沙鐵嶺歌後[서백사철령가후]  宋時烈[송시열]

백사(이항복)의 철령가 뒤에 쓰다.

 

철령 높은 재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고신 원루를 비 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구중궁궐에 뿌려본들 어떠리.

 

鐵嶺高處宿雲飛[철령고처숙운비] : 철령 높은 곳에서 자고 나는 저 구름아

飛飛何處歸[비비하처귀] : 날고 날아서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가.

願帶孤臣數行淚[원대고신수행루] : 외로운 신하 원함은 몇 줄기 눈물 두르고 

作雨去向終南白嶽間[작우거향종남백악간] : 비를 지어 종남산과 백악산 사이로 향해 나아가

沾灑瓊樓玉欄干[점루경루옥란간] : 궁전의 옥 나간에 뿌려 적시시라.

右翻鐵嶺歌[우번철령가]效水調頭詞體[효수조두사체]

번역된 이 철령가는 水調詞[수조사]의 文體[문체]를 본뜬 것이다.

 

위는 백사 이 문충공(이항복)이 北靑[북청]으로 귀양 갈 때 지은 철령가이다.

공은 비록 流離[유리]困窮[곤궁]한 처지에 있었으나,

임금을 사랑하여 잊지 못하고 정성이 吟詠[음영, 시가를 읊음]하는 사이에

이처럼 저절로 나타났는데, 저 임금의 寵信[총신]을 얻지 못했다 하여

곧 怨怒[원노]와 憤激[분격]의 뜻을 두는 자는 과연 무슨 마음인가.

廢朝[폐조, 광해군]가 후정에서 잔치하며 놀다가

어떤 궁인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는

그것이 공의 소작임을 알고 愀然[추연]해진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술 자리를 파하였으니,

그 聲詩[성시]의 사람을 감동시킴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끝내 宋[송] 神宗[신종]이 수조사에 감동되어 蘇東坡[소동파]를

量移[양이, 먼 곳으로 귀양 간 사람을 가까운 곳으로 옮김)시키듯 하지 못하고

마침내 공으로 하여금 먼 변방에서 죽게 하였으니,

이것이 그 存亡[존망]의 길이 다르게 된 것이다.

기억하건대, 지나간 天啓[천계, 明[명]熹宗[휘종]의 연호] 신유년(1621, 광해군13)에

廢朝[폐조,광해군] 또한 소인배 무리의 誣陷[무함, 없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꾸밈]과

欺罔[기망, 남을 그럴듯하게 속임]을 미워하여 하교하기를,

“金悌男[김제남, 둘째 딸이 인목왕후]은 그대들의

德[덕, 김제남이 멸망함으로써 군소배가 출세했다는 말]이 된 지 오래다.

오늘날 의논하는 자가 매양 김제남을 말하는데,

말이 신기하지 않고 듣기도 피로하니, 이 말은 이제 그만두라.”하였다.

그렇다면 폐조(광해군)도 군소의 奸凶[간흉]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니,

군소배의 간흉을 알았다면, 공의 충성되고 어짊을 알았음이 더욱 분명하다.

그러나 威福[위복, 위압과 복덕]이 이미 아래로 옮겨져서,

恩澤[은택, 은혜와 덕배]이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다가

마침내 운수가 오래가지 못하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千載[천재, 천세] 뒤에라도 이 노래를 듣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 없는 자이다.

숭정 기원 후 연 월 일에 은진 송시열은 삼가 쓴다.

 

右白沙李文忠公北遷時鐵嶺歌也[우백사이문충고북천시철령가야]

公雖在流離困阨之際[공수재류리곤액지제]而愛君不忘之誠[이순군불망지성]

自然形於吟詠之間者如此[자연형어음영지간자여차]

彼不得於君而便有怨怒憤激之意者[피부득어편유원로분격지의자]果何心哉[과하심재]

廢朝遊宴後庭[폐조유연후정]聞一宮人唱此[문일궁인창차]問知爲公作[문지여공작]

愀然不樂[창연불락]因泣下而罷酒[인읍하이파주]

其聲詩之感人也如是夫[기성시지감인야여시부]

然終不能如宋帝感水調詞而東坡得蒙量移[연종불능여송제감수조사이동파득몽량이]

卒使公歿於窮荒[졸사공몰어궁황]此其所以存亡之異途也[차기소이존망지리도야]

記昔天啓辛酉間[기석천계신유간]廢朝亦惡群小輩誣罔[폐조역오군소배무망]

敎曰[교왈]悌男之爲若德久矣[제남지위약덕구의]

今之議者[금지의자]每以悌男爲言[매이제남위언]

語不新奇[어불신기]聽亦疲勞[청역피로]此言汔可休矣[차언흘가휴의]

然則廢朝非不知群小之奸兇矣[연즉폐조비부지군소지간흉의]

知群小之奸兇[지군소지간아]則知公之忠賢也[즉지공지충현야]尤益明矣[우익명의]

而威福旣已下移[이위복기이하이]

只屯膏泣血而竟至於不長[지둔고읍혈이경지어부장]可勝歎哉[가승탄재]

千載之下[천재지하]聞此歌而淚不下者[문차가이루불하자]

眞所謂無人心者也[진소위문인심자야]

崇禎紀元之年月日[숭정기원지연월일]恩津宋時烈謹跋[은진송시열글발]

 

백사 이항복이 1617년 인목대비 폐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북파의 모함을 받아 실각하고서는,

60 넘은 고령에 중풍까지 앓고 있던 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함경도 북청부로 유배를 떠나면서 철령 고개에서 읊은 시조입니다

북청으로 유배를 떠난 뒤 혹독한 추위에 고생하다가

병에 걸려 5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