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人雖曰樂天知命[고인수왈낙천지명]亦恐此強言也[역공차강언야]
吾輩之事[오배지사]縱使古人當之[종사고인당지]有不暇樂焉知焉也[유불가낙언지언야]
옛 사람이 비록 樂天知命[낙천지명] ‘천명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안다’고 했으나
실로 억지로 한 말인 듯합니다.
우리의 일은 설사 옛사람이 당했더라도
천명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알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申欽,[신흠 : 1566-1628], 象村稿[상촌고] 권34 書牘[서독] 寄淸陰[기청음]
청음 김상헌에게 부치다.
신흠이 김상헌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당시 조정에서 물러나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차에
김상헌이 유배를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신흠은 편지로 위와 같이 말했다.
'樂天知命[난천지명]’은 周易[주역] 繫辭傳[계사전]의 樂天知命[낙천지명] 故不憂[고불우]
“하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명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
에서 나온 말로, 본래 슬픔이나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데 많이 쓰였다.
그런데 신흠은 이 말에 딴지를 건다.
옛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고통을 감내하자는 취지의 어조가 아니라
옛 사람이라도 우리의 힘든 상황을 버텨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공감의 어조를 취한 것이다.
孟子[맹자] 告子[고자]편 하 15에 있는 구절.
天將降大任於是人也[천장강대임어시인야]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에는
必先苦其心志[필선고기심지] :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勞其筋骨[노기근골] : 그의 힘줄과 뼈를 고달프게하고
餓其體膚[아기체부] : 그의 육체를 굶주리게하고
空乏其身[공핍기신] : 그의 몸을 헛되이 지치게하여
行拂亂其所爲[행불란기소위] : 그가 행하는 일마다 어긋나서 이루지 못하게 하니
所以動心忍性[소이동심인성] : 이는 그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그의 성질을 참도록 하여
增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 그가 잘하지 못했던 일을 더욱 잘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함이다.
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발판이며 이 역경을 이겨내면
더 큰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에도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많이 하곤 한다.
틀린 말이라곤 할 수 없지만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은 정말 그 사람을 위함인가?
그 시련은 참는다고 극복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한심하게 보며
“우리 땐 더 힘들었어. 너희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며
힘들다고 말하기도 전에 그들의 말을 막아버린다.
이러한 생각은 젊은이들을 근성 없는 놈, 노력이 부족한 놈으로 취급하며
마치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들이 그들의 잘못인 것처럼 만들어왔다.
몇 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유행하더니
얼마 전에는 그 반대급부로
“아프면 환자지.”
라는 방송작가 겸 코미디언 유병재의 말이 인기를 얻었다.
젊은이들은 그동안 힘든 상황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참아내는 데 너무 익숙해져왔다.
왜 아파야 청춘인가.
왜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는가?
‘금수저-흙수저’ 논란이 일면서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은 무용지물처럼 되었다.
이제는 충분히 알 것이다.
누군가 겪고 있는 시련들이 그를 큰사람으로 만들기 위함도 아니며
그의 잘못으로 비롯된 일도 아님을.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에게 부족한 건 노력이 아니다.
힘들다 말할 용기다.
신흠의 말이 조금 불경했다면 어떤가.
옛 사람의 ‘낙천지명’보다 속 시원하지 않은가.
누구보다 노력하며 고생하고 있을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참지 않아도 돼. 힘들다고 말해도 돼.
고전번역원 김혜진님이 보내주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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