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恒福

裕陵挽詞[유릉만사]

돌지둥[宋錫周] 2023. 8. 16. 15:10

裕陵挽詞[유릉만사]         白沙 李恒福[백사 이항복]

   유릉[의인왕후]만사   

 

伊昔仁和夜[이석인화야] : 그 옛날에 인화문의 깊은 밤에

蒼黃鳥擇棲[창황조택서] : 급한 새가 둥지를 찾듯 하였네.

蘭階燈影少[난계등영소] : 난계(궁전)엔 등불 그림자 적고

繡幄雨聲凄[수악우성처] : 수놓은 휘장에 비 소리 처량했네.

獨秉金蓮照[돋병금련조] : 홀로 금련촉을 잡고서 밝히니

親扶玉輅西[친부옥로서] : 친히 옥수레 올라 서쪽으로 가셨네.

再三天語慰[재삼천어위] : 두 세번 하늘의 말로 위로하시니

只尺寸心迷[지척촌심미] : 지척의 작은 마음이 혼미하였네.

運復千春慶[운복천준경] : 국운 기필코 진작하여 회복해 기쁜데

灾生萬姓啼[재생만성제] : 재앙 내리시어 많은 백성 울부짖네.

㘅恩兼仰德[함은겸앙덕] : 은혜를 입고 겸하여 덕을 앙모하나

詞拙若爲題[사졸약위제] : 문장이 옹졸하니 거짓으로 글을쓰네.

               

壬辰之變[임진지변] : 壬辰年[임진년]의 변이 일어나서

忠州敗報至[충주패보지]  : 忠州[충주]의 敗報[패보]가 이르자,

上下西廵之 敎[상하서순지 교]  : 上[상]께서 서쪽으로 蒙塵[몽진]하겠다는 전교를 내렸는데,

百官皆歸私第[백관개귀사제] : 百官[백관]은 모두 私第[사제 : 私邸[사저]로 돌아가 있었고,

衛士一時散歸[위사일시산귀] : 衛士[위사]들도 일시에 흩어져 돌아가 버려서,

闕內寥落如空宮[궐내요락여공궁] : 대궐 안이 적막하기가 마치 텅 빈 궁전 같았다.

及曉[급효]天陰雨下[천음우하] : 새벽에 이르러서는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려서

只尺黯慘[지척암참] :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고,  

駕已備[가이비]而仁和門外[이인화문외]  : 車駕[거가]는 이미 준비되었으나 仁和門[인화문] 밖에는 

閴無人蹤[격무인종] : 전혀 인적이 없었다.

內殿獨與侍女十餘人[내전독여시녀십여인] : 그러자 內殿[내전]께서 홀로 侍女[시녀] 10여 인과 더불어

步出仁和門[보출인화문] : 인화문까지 걸어 나왔다.

時余以都承旨[시여이도승지] : 이때 나는 都承旨[도승지]로서

秉燭待門外[병촉대문외]前導以出[전도이출] : 촛불을 잡고 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앞에서 인도하여 나왔는데, 

內殿顧問秉燭者何官[내전고문병촉자하관] : 내전께서 돌아보고 촛불 잡은 사람이 어느 관원이냐고 묻자,

侍女白都承旨李某[시녀백도승지이모] : 시녀가 都承旨[도승지] 李某[이모]라고 아뢰니,

內殿嗟歎慰諭[내전차탄위유] : 내전께서 감탄하고 위로하여 타이르면서 

勉以忠義[면이충의]故及之[고급지] : 忠義[충의]를 激勵[격려]하였으므로 여기에 언급한 것이다.

 

 

裕陵[유릉] : 선조 33년 懿仁王后[의인왕후 : 1555-1600]가 죽자  裕陵[유릉]터에 안장함.

     후에 선조의 穆陵[목릉]으로 불림.

懿仁王后[의인왕후] :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의 정비.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피난을 떠나 1595년 한양으로 돌아왔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광해군과 황해도로 피난을 갔다.

   1599년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병세가 깊어져 일년 뒤 세상을 떠났다[1600].

蒼黃[창황] : 어찌할 겨를 없이 매우 급함.

蘭階[난계] : 宮殿[궁전]의 美稱[미칭].

 

白沙先生集卷之一[백사선생집1권] 詩[시]

李恒福[이항복], 1556-1618,일명 鰲城大監[오성대감].

   자는 子常[자상], 호는 弼雲[필운]·白沙[백사]·東岡[동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