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耽羅道中寄示畏齋玄石[탐라도중기시외재현석]

돌지둥[宋錫周] 2022. 2. 6. 07:51

耽羅道中寄示畏齋玄石[탐라도중기시외재현석]   宋時烈[송시열]

탐라로 가는 도중에 외재와 현석에게 부쳐 보이다.

朴世采[박세채]○己巳二月十七日[기사2월17일]行到井邑川原驛作[행도정읍천원역작]

박세채. 1689, 숙종15) 2월 17일 井邑[정읍] 川原驛[천원역]에 이르러 짓다.

 

上爲閩翁下栗翁[상위민옹하율옹] : 위로는 주돈이 주자를 아래로는 율곡을 위하여
要除弊事罄愚衷[요제폐사경우충] : 폐단의 일을 잡아 없애려 우직한 마음을 다했네.
如今却向耽羅去[여금각향탐라거] : 이제 물러나 탐라(제주도)를 향하여 떠나가면서
回望寧陵泣孝宗[회망영릉읍효종] : 영릉을 돌이켜 바라보고 효종 생각에 울었다네 .

 

孝廟嘗敎曰[효묘상교왈]

明天理[명천리]正人心[정인심]吾責也[오책야]

今日與我共此者[금일여아공차자]捨卿其誰乎[사경기수호]

효종께서 일찍이 하교하시기를

“하늘의 이치를 밝히고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나의 책임이다.

이제 나와 함께 이 일을 할 사람은 경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하였다.

 

畏齋[외재] : 李端夏[이단하 : 1625-1689]의 호, 자는 季周[계주].

   송시열의 문하에서 자라나 조선 후기 경학을 대표할 만한 학자.

玄石[현석] : 朴世采[박세채 : 1631-1695]의 호, 자는 和叔[화숙], 다른 호는 南溪[남계]

   金尙憲[김상헌]과 金集[김집]의 문하에서 수학.

   숙종 초에 송시열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였으나,

   노런 소론 분열 이후에는 尹拯[윤증]을 두둔하고,

   소론계 학자들과 학문적으로 교류하였다.

閩翁[민옹] : 周敦頤[주돈이], 周子[주자], 濂溪[염계], 濂翁[염옹], 茂叔[무숙].....

   宋 나라의 유학자. 程顥[정호], 程頤[정이] 형제의 스승으로,

   道家思想[더가사상]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유교이론을 창시함.

   저서에 《太極圖說[태극도설]》, 《通書[통서]》등이 있음.

栗翁[율옹] : 栗谷[율곡] 李珥[이이].

弊事[폐사] : 해롭거나 좋지 못한 일.

耽羅[탐라] : 耽羅國[탐라국], 제주도의 옛 이름.

寧陵[영릉] : 경기도 여주 능서면에 있는 효종의 능.

孝宗[효종] : 鮮[조선] 시대 제17대 왕. 휘는 淏[호], 호는 梧[죽오],

   祖[인조]의 둘째 아들, 亂[병자호란] 이듬해 형 顯[소현] 세자와 함께

   청나라로 볼모로 잡혀가 8년 동안 있었음. 장기간의 볼모 생활로

   淸[청]나라에 대한 원한을 품고, 이를 설욕하고자 伐[북벌]을 계획하여,

   烈[송시열]과 무장 浣[이완]을 시켜 국력을 양성하였으나,

   즉위 10년만에 요절하면서 북벌의 뜻을 실행하지는 못했다. 

 

宋子大全卷二[송자대전2권] 詩[시]七言絶句[칠언절구] (1607-1689)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3

 

1680년 우암이 유배에서 복귀한 이후

서인이 노론과 서인으로 분당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긴 했지만

비교적 소강상태였던 정국에 먹구름이 드리워졌으니,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이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은

외척의 발호를 막고 정치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國婚勿失[국혼물실 : 왕비는 반듯이 서인 집안에서 낸다.]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해왔다.

이 원칙대로 서인은 줄곧 숙종의 비를 배출하였으나

정비인 인경왕후는 후사 없이 일찍 죽고,

계비로 들어온 인현왕후는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러니 장희빈이 아들을 낳자

숙종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으니,

태어난 지 3개월도 안된 왕자를

원자로 삼아 장차 세자가 될 지위를 확고히 하고 싶었다.

 

여기까지는 조선시대 왕가에서 흔히 있었던 일로서,

목숨을 건 정쟁을 벌일 일은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장희빈의 어머니의 집안이 남인이라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종으로 살았던 집안이

남인이라는 하찮은 인연으로 정권에 밀려나 있던 남인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원자를 지지하였고,

같은 이유로 서인은 극력 반대하면서

남인과 노론 간에 치열할 정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화양동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우암이

아직 정비인 인현왕후의 나이가 젊은데

후궁의 아들을 섣불리 원자로 삼는 일은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숙종은 귀한 아들을 얻어 흐뭇해하고 있는데

노론들이 끊임없이 찬물을 끼얹고 있으니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숙종은 화를 억누르고 우암을 설득해보지만

신념을 목숨같이 여기는 우암도

칼 같은 성품답게 한 치 흔들림이 없었지요.

결국, 숙종은 장희빈을 위하여

인현왕후를 폐서인 시켜버리고,

83세의 우암은 제주도로 귀양 보냈으며

노론 세력을 숙청해버린 뒤 다시 정국이 바뀌어

남인 정권이 들어섰으니,

1689년 숙종대 일어났던 두 번째 환국인 己巳換局[기사환국]이다.

 

우암은 간신히 노구를 이끌고

제주도로 귀향을 가다가 康津[강진] 白蓮寺[백련사]에서

시를 남기셨다.

 

八十三歲翁[팔십삼세옹] : 팔 십 삼세의 늙은 몸이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 푸른 물결의 만리 가운데구나.

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 : 한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 세 번을 쫓겨나니 또한 궁핍하네.

北極空膽日[북극공담일] : 북쪽 끝 하늘의 해를 바라보며

南暝但信風[남명단신풍] : 어두운 남쪽에 다만 바람만 믿네.

貂裘舊恩在[초구구은재] : 담비 갖옻엔 옛 은혜가 있으니

感激泣孤在[감격읍고재] : 감격하여 외로이 눈물만 있구나.

 

錦谷先生文集卷之十四[금곡선생문집14권] 墓碣[묘갈]

雲谷宋公墓碣銘[운곡송공묘갈명]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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