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韻[차운]寄題黃仲擧新構竹閣[기제황중거신구죽각]
退溪 李滉[퇴계 이황]
황중거가 새로 죽각을 짓고 읊은 시를 차운하여 보내다.
夏赴都後[하부도후] : 여름에 서울에 부임한 뒤.
肉食終難近臭銅[육식종난근취동] : 고기 먹으려 끝내 돈 냄새 가까이하기 어렵고
此君唯足友軒中[차군유족우헌중] : 대나무가 오직 높은 가운데 벗으로 충분하네.
竿竿玉立非爭列[간간옥립비쟁렬] : 그루마다 옥이 서듯 나란히 서서 다투지 않고
籜籜龍騰欲上空[탁탁룡등욕상공] : 대 껍질마다 용이 올라와 하늘로 오르려하네.
瘦石寒溪團翠色[수석한계단취색] : 오똑한 돌은 차가운 시내 푸른빛이 모여 들고
疎櫺虛檻灑淸風[소령허함쇄청풍] : 트인 처마와 빈 난간에 맑은 바람이 뿌리누나.
可憐人境俱新處[가련인경구신처] : 사람들 고장 새로운 곳 함께하니 애틋하지만
續舊題詩愧未工[속구제시괴미공] : 옛날의 시를 써 이으려니 솜씨 없어 부끄럽네.
臭銅[취동] : 銅臭[동취], 동전에서 나는 냄새라는 뜻으로,
재물을 자랑하거나 재물로 출세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시는 제자 黃俊良[황준량,1517-1563]이 신령현감으로 부임하여
竹閣[죽각]을 신축한 감회를 읊은 시를 선생께 보내 드리니,
그 시를 차운하여 답을 하신 시이다.
細註[세주]에 여름에 서울에 온 뒤에 지으셨다 하셨으니
1552년 5~6월에 지으셨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준량은 신녕현감 재직 시에 흉년에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고
전임자가 남긴 부체를 절약과 긴축으로 충당하고 그 문서를 불태워 없앴으며,
白鶴書院[백학서원]을 창설하여 백성들의 교육진흥에도 힘썼다.
백학서원의 재산으로 1921년에 창설된 백학학원은 일제강점기에는
젊은이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며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항일시인 李源祿[이원록, 1904-1944], 호 陸史[육사]이 18살에 수학하고 19살에 교사로 재직하였다.
1516년(중종 11년) 현감 李考[이고]가 북악 죽전아래에 悲碧亭[비벽정]을 짓고 자호로 삼았다.
그 후 1552년(명종7년)에 황준량이 황폐된 비벽정 자리를 헐고 竹閣[죽각]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1611년(광해군3년)에 현감 宋爾昌[송이창]이 중건하여
이름을 環碧亭[환벽정]으로 고쳤다. 그 후에는 1890(고종 27년) 민영후현감이
중수하고 1980년 9월에 다시 중건하였다.
退溪先生文集卷之二[퇴계선생문집2권] 詩[시]
한국고전번역원ㅣ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ㅣ1989
李滉[이황 : 1501-1570] : 본관은 眞城[진성], 자는 景浩[경호],
호는 退溪[퇴계], 退陶[퇴도], 陶搜[도수].
주자성리학을 심화, 발전시킨 조선의 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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