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德懋[이덕무]

登沙峯望西海[등사봉망서해]

돌지둥[宋錫周] 2024. 7. 5. 22:56

登沙峯望西海[등사봉망서해]  李德懋[이덕무]

사봉에 올라 서해를 바라보다.

 

逈立罡風不自由[형립강풍부자유] : 멀리 전해지는 강한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해
龍腥蜃彩盪難收[용성신채탕난수] : 용 비린내 조개 빛깔 거두기 어렵게 갈마드네.
時維戊子冬之孟[유시무자동지맹] : 계절은 무자(1768)년의 사나운 겨울 유지하고
行次朝鮮地盡頭[행차조선지진두] : 다니다 머문 곳은 조선의 땅 끝 닿은 곳이라네.
意內盈盈無限海[의내영영무한해] : 정취 속에는 한 없는 바다가 가득차 출렁이고
指端歷歷所經州[지단열력소경주] : 손가락은 지나온 고을의 일정 역력히 살피네.
蒼然一攬長山串[창연일람장산곶] : 저물녁 어둑함에 장산 곶을 잠시 잡아당기니
七十里松漭欲浮[칠십리송망욕부] : 칠십 리의 소나무가 떠있는 듯 어둑어둑하네. 

 

地盡頭[지진두] :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와 연접하여 끝을 이룬 땅.

歷歷[역력] : 모든 것이 환히 알 수 있게 똑똑함.

長山串[장산곶] : 황해도 장연군의 남쪽 끝에 위치하여 황해로 쑥 내민 뾰족한 땅.

 

靑莊館全書卷之九[청장관전서9권] 雅亭遺稿[아정유고] 詩[시]

李德懋[이덕무,1741-1793] : 자는 懋官[무관], 호는 炯庵[형암]·雅亭[아정]·

    靑莊館[청장관]·嬰處[영처]·東方一士[ 동방일사]·信天翁[신천옹].

  조선후기 관독일기, 편찬잡고, 청비록 등을 저술한 유학자. 실학자.

 

이덕무의 서해지방 기행문인 西海旅言[서해여언]에

 

十二日丙寅[십이일병인]留助泥鎭[류조니진]登沙峰[등사봉]

12일 병인일에 황해도 장연의 조니진에 머물며 사봉에 오르다.

 

“조생과 박생 두 소년이 나를 따라와

바닷가 沙峰[사봉]을 유람했다.

사봉은 바다속 모래가 바람에 밀려와

모래 산이 되었는데 지극히 섬세하고 깨끗하다.

높이는 80尺[척] 정도 된다.

깎아 세운 듯 솟아 있는데 오르려고 해도

붙잡고 오를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얼핏 보면 城[성] 같기도 하고

흙 언덕 같기도 하고

섬돌 같기도 하고 이랑 같기도 하다.

혹은 움푹하다가 혹은 내리 뻗었다.

마치 허공에 매여 있는 듯하고 둥둥 떠 있는 듯하다.

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며

옷자락을 때리고 신발에 가볍게 끌리며

물결에 쓸리고 풀잎에 긁힐 때면

번득번득 소록소록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다.

시험 삼아 다섯 손가락으로 모래 산 아래를 긁어보았다.

무너진 모래 산 아래를 메우기 위해

위에서 모래가 흘러 내렸다.

손가락 놀림에 따라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움직였다.

먼 위쪽 동그란 둔덕의 모래까지 흘러내리는데

그 기세가 마치 향연이 피어올라 허공에 떠 있을 때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모양 같다가

혹은 駿馬[준마]가 머리를 내두를 때

갈기털이 간들거리는 모양 같았다.

빗방울이 얇은 종이에 떨어지는 듯

부드럽게 젖어드는 듯하고

또한 만 마리 누에가 야금야금 먹어 뽕잎이 없어지는 듯하다.

조생과 박생이 기를 쓰고 모래 산에 올랐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올랐다.

그런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대로 모래에 빠져서 마치 발목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봉의 모래가 마구 흘러내려 발자국을 이내 지워버렸다.

마침내 사봉의 정상에 올라 서쪽으로 大海[대해]를 바라보았다.

아득한 수평선에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鼉龍[타룡]이 뿜은 파도가 자욱하게 하늘과 맞닿았다.

한 마당 가운데 울타리를 치면 그 경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이웃이라고 부른다.

지금 나와 조생‧박생 두 소년은

이쪽 모래 언덕에 서 있고

중국의 登州[등주], 萊州[내주] 사람들은 저편 언덕에 서 있다.

이웃 사람처럼 서로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눌 만하다.

그러나 이쪽과 저편을 가로지르고 있는 바다가

넓고 깊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이웃 사람의 얼굴을 서로 알 수도 없다.

귀로 들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고

발걸음이 닿을 수도 없는 곳이지만

오직 마음만은 달려갈 수 있다.

마음은 아무리 먼 곳이라고 해도

가지 못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이미 저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한 저편에서도 이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다는 하나의 울타리에 불과할 뿐이니

서로 보고 듣는다고 해도 안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만약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 상공에 올라

이쪽과 저편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면

모두 한집안 사람들인데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는 이웃 사람이라고

생각할 까닭은 또 무엇인가!

높은 모래 산에 올라 먼바다를 바라보니

내가 더욱 작고 보잘것없이 느껴져

아득히 시름에 잠겼다가

문득 스스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저편 섬사람들이 가여워졌다.

가령 탄환 같은 작은 땅에

해마다 기근이 들고 파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흉년 때 나라에서 빌려주는 곡식조차

전달받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또한 바다 도적이 일어나서

순풍에 돛을 달고 쳐들어오면

도망칠 곳도 없어서

모두 도륙을 당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할 것인가?

용과 고래와 악어와 이무기 등이

뭍에다 알을 낳고 억센 이빨과 독한 꼬리로

사람을 마치 감자를 삼키듯 먹어치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바다 신이 분노해 파도를 일으켜

마을을 남김없이 집어 삼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닷물이 멀리 밀려가

하루아침에 물이 말라버려

외로운 뿌리 높은 언덕만

앙상하게 그 바닥을 드러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파도가 섬 밑동을 갉아먹어버려

흙과 돌이 지탱하지 못하고

바다 물결을 따라 무너져버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저런 걱정에 빠져있던 바로 그때 客[객]이

"섬사람은 끄떡없는데

오히려 그대가 먼저 위험하네.

바람이 불어 닥치니
장차 모래 산이 무너질 것 같네"라고 말하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모래 산을 내려왔다.
평평한 땅에 발이 닿자 슬슬 거닐며 돌아왔다."

 

내가 동으로 佛胎[불태], 長山[장산] 등

바다에 둘러 있는 산들을 바라보고 탄식하기를,

"저것은 바다 속의 흙이네.”

하였더니, 객이,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자네 시험삼아 도랑을 파보게.

파인 흙이 언덕처럼 쌓일 것 아닌가.

하늘이 큰 못을 파면서 파 던진 찌꺼기가 산이 된 것이네."

하고, 그 길로 두 젊은이와 함께

追捕[추포]하는 막사에 들어가

한 잔의 大白[대백, 큰 술잔]으로

海遊[해유,바다를 즐김]하던 가슴을 축였다.

 

고전 번역원 번역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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