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初欲痛陳君德[공초욕통진군덕] 小答恩遇[소답은우]
공은 처음에 임금의 덕을 사무치게 나타내고 은혜에 삼가하여 답하였으나,
而以筵奏有難盡意[이이연주유난지의] 將具箚袖[장구차수] 進於陛辭之日[징어폐사지일]
아뢰는 자리에서 뜻을 모두 말하기 어려우면, 거의 소매에 상소문을 갖추어 폐하께 사퇴하는 날에 올렸다.
至是朝著之間[지시조저지간] 浮議大播[부의대파] 再對之日[재대지일]
이에 이르러 조정 사이에 들뜬 논의가 크게 퍼지고 다시 면대하던 날에
乃有論語始講後[내유논어시강후]退去之教[퇴거지교]
이에 論語(논어)를 일찍 강론한 뒤에 물러가라는 명령이 있어
而數日之內[이수일지내] 遽畢中庸[거필중용] 促命入侍[촉명입시]
수일 내에 급하게 中庸(중용)을 마치고 재촉하는 명령에 입시하니
則公之行[즉공지행] 不可復留[불가부류] 而箚亦未及就矣[이차역미급취의]
곧 공의 행동은 다시 머무를 수가 없었고, 그리고 상소문 또한 함께 이루지 못했다.
公不得已[공부득이] 將於前席[장어전석] 悉暴衷悃[실폭충곤]
공이 마지못해 장차 어전에서 간곡한 속 마음을 다 드러내려다가
又因聖心激惱[우인성심격뇌] 未畢而退[미필이퇴]
또 인하여 임금의 마음이 격동하고 번뇌하므로 다 끝내지 못하고 물러났다.
餘懷耿結[여회경결] 不能自己[불능자기] 遂進此疏[수진차소]
나머지 생각이 한결같이 맺혀 스스로 마지못해 마침내 이 상소를 드린 것인데,
而實非公本意也[이실비공본의야] 사실은 공의 본래 뜻은 아니었다.
然今讀其疏[연금독기소] 究極乎此心廣大之體[궁극호심광대지체]
그러나 지금 그 상소를 읽으니, 극도에 달한 이 마음으로 넓고 크게 용납하고
而透闡其微妙[이투천기미묘] 推本乎方寸幽隱之地[추본호방촌유은지지]
그 미묘한 것을 투명하게 밝히고, 마음은 그윽한 지경에 근본을 추구하여
而指切乎事[이지절호사위] 爲理純而詞直[위리순위사직] 言近而旨遠[언근이지원]
일을 가르키고 간절하게 하니, 이치가 순수하며 하는 말이 곧고, 말이 가까우면서도 뜻은 멀어
苟非用力之深至[구비용력지심지] 體驗之真切 [체험지진절]
진실로 심력을 씀이 깊은 데에 이르고 체험하는 것이 진실 되고 간절하지 않으면,
何能及此哉[하능급차재] 어찌 여기에 미칠 수 있겠는가.
公既投疏即發[공기투소즉발] 路聞批旨嚴切[노문비지엄절]
공이 이윽고 상소를 던지고 곧 출발하는데 길에서 비답의 말씀이 매우 엄격하다 들렸고,
胥命於文義縣[서명어문의현] 문의현에서 임금의 처분 명령을 기다렸다.
於是大臣政院三司[어시대신정원삼사] 及館學儒生[급관학유생] 交章伸救[교장신구]
이에 대신과 승정원과 삼사 및 성균관의 유생들이 서로 글을 올려 변명하여 구원하니,
皆不省[개불성] 只例下勿待命之教[지례하물대명지교]
모두 살피지 아니하고 다만 명을 기다리지 말라는 교시를 내렸다.
後因玉堂尹勉憲[후인옥당윤면헌]爭論還收前後嚴敎[쟁론환수전후엄론]
뒤에 옥당 尹勉憲(윤면헌)이 전과 후에 내린 엄한 교서를 거두라고 논쟁하니,
至甲申正月[지갑신정월] 用大臣言[용대신언] 還授贊善[환수찬선]
갑신(1764)년 정월에 이르러 대신의 말을 들어 다시 찬선에 제수하였으나
而上意猶未釋然[이상의미석연] 임금의 뜻은 오히려 환하게 풀리지 않으셨다.
十一月[십일월] 因申暻疏[인신경소] 命山林諸臣[명산림제신]
11월에 申暻(신경)의 상소에 따라 산림의 여러 신하들을
幷免爲庶人[병면위서인] 放歸田里[방귀전리]
모두 면직하여 서민이 되어 시골 마을로 돌아가게 놓아두었다.
既又下御製[기우하어제] 以公及金時燦申暻朴致隆[이공급김시찬신경박치륭]
그리고 또 御製(어제)를 내려, 공과 金時燦(김시찬), 申暻(신경), 朴致隆(박치륭 )을
同書名黨籍[동서명당적] 함께 당적에 이름을 쓰고
而推以及於宋文正權文純二先正名之[이추이급어송문정권문순]
송문정(宋文正)과 권문순(權文純)을 천거하여 두 선대의 어진이에게 이름이 함께 하여
曰嚴堤防裕後昆錄[왈엄제방유후곤록] 이르길 嚴堤防裕後昆錄(엄제방유후곤록)이라고 이름하였다.
1764년 11월 30일 영조가 지은 嚴堤防裕昆錄(엄제방유곤록) 뒤에 쓴 기록으로
'엄제방'이란 엄하게 방비하라는 의미, '유곤'은 西經(서경)에서 따온 말로
의리와 예의로서 후세에 덕행을 남긴다는 의미.
公以所被罪名[공이소피죄명] 雖名歸田[수명귀전] 晏然在家[안연재가] 於心終不安[어심종불안]
공은 죄명을 입은 바, 비록 시골에 돌아가라 명하니 차분하고 침착히 집에 있었으나 마음은 늘 불안하였다.
乃移寓於沃川之方谷[내이우어옥천지방곡] 而改方爲放[이개방위방]
이에 옥천의 방곡으로 옮겨 붙어 살며, '方(방)'을 '放(방)'으로 고치고서
以伸自靖之義[이신자정지의] 久而後還[구이후환]
스스로 편안하다는 뜻을 펼치고, 오래된 뒤에 돌아왔다.
丁亥元月[정해완월] 用酒太廟[용주태묘] 始下宥命[시하수명]
정해(1767)년 1월 태묘에서 음주례를 행하고 비로소 용서한다는 명이 내려졌다.
戊子盡室入塗谷舊第[무주진실입도곡구제] 무자년(1768)에 온 가족이 도곡의 옛집에 들어갔다.
及卒[급졸] 術者謂有星隕之異云[술자위유성운지이운]
돌아가심에 함께한 術者(술자, 천문관)이 이르길 "별이 떨어지는 괴이함이 있었다."고 하였다.
正言李趾承[정언이지승] 上疏引顯廟處文正公故事[상소인현묘처문정공고사]
정언 李祉承(이지승)이, 상소에 현종 때에 문정공을 처리한 고사를 이끌어
請亟下隱卒之命[청극하은졸지명] 上從之[상종지] 即令該曹擧行[즉령해조거행]
급히 죽은 이에게 편안히 하라는 명을 청하니, 상이 이것을 따라서, 해당 관청에 명하여 거행하게 하였다.
九月葬于錦山川內負乙之原[구월장우금산천내부을지원]
9월에 錦山川(금산천) 내를 구해 乙坐(을좌)의 언덕에 의지해 장사지냈다.
後五年壬辰秋[후오년임진추] 上因事激怒[상인사격노]
5년 뒤 임진(1772)년 가을에 임금께서 격노하여
命追奪公官爵[명추탈공관작] 竄子時淵於耽羅[찬자시연어탐라]
공의 관작을 추탈하라고 명하고, 아들 時淵(시연)을 탐라(제주)로 내 쫒으니,
蓋以公癸未疏事也[개이계미소사야] 아마 공이 계미(1763)년 상소의 일이리라.
至甲午五月[지갑오오월] 納相臣元仁孫言[납상신원인손언] 復公官[복공관]
갑오(1774)년 5월에 이르러 우의정 원인손의 말을 받아들여 공의 관작을 회복시켰다
嗚呼[오호] 此公出處履歷[차공출처이력]始終屈伸之大略也[시종굴신지대략야]
오호라! 이것은 공의 출처와 이력이 처음부터 끝까지 굽히고 펼친 것의 대강의 줄거리이다.
公[공]方面長身[방면장신] 豊額烱眸[풍액경모]
공께선 바른 얼굴에 몸은 거대하고, 풍성한 머리 머리에 눈동자가 빛나며
風儀神采[풍의신채] 絶出倫類[절출륜류]
드러난 모양은 신과 같은 풍채에 보통사람보다 비할데 없이 뛰어나,
人謂酷肖文正公[인위혹초문정공] 사람들이 "문정공과 흡사하다."라 생각하였다.
性莊重簡默[성장중간묵] 平居無疾言遽色[평거무질언거색]
성품은 장중하고 말수가 적고 신중하고, 평소에 빠른 말씀과 급한 빛이 없으며,
清明溫粹[청명온수] 瀅澈無瑕[형철무하] 맑고 밝고 온화하고 순수하며, 맑고 깨끗해 허물이 없고
待人接物[대인접물] 渾是一團和氣[혼시일단화기]
남과 접촉하여 사귐에 완전히 단합되어 원만하게 화한 기운으로 하였다.
然遇事辯論[연우사변론] 斷以義理[단이의리] 그러나 일을 만나 변론할 때는 단연히 의로써 하였으니,
則却嚴確峻正[즉각엄확준정] 截然不可犯[절연불가범]
곧 엄격하고 확실하며 준엄하고 곧았으므로 절연히 가히 범할 수가 없었다.
其爲學[기위학] 一遵朱門成法[일준주문성법] 그 학문을 배우며 오로지 주자 문하의 성법을 따르며
知行雙進[지행쌍진] 動靜相資[동정상자] 而一主乎敬[이일주호경]
知(지)와 行(행)이 나란히 나아가고, 動(동)과 靜(정)이 서로 의지하여 오로지 敬(경)을 주로 하고
讀書則以循序致精[독서즉이순서치정] 글을 읽은 즉 순서에 따라 정밀함에 이르렀다.
潛心體驗爲要[잠심체험위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소 경험하며 성취해 다스리며
制行則以孝友忠信溫厚易直爲本[제행즉이효우충신온후이직위본]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효우와 충신과 온후와 굳센 다스림으로 근본을 삼았으며,
無事則默坐澄心[무사즉묵좌징심] 體認大本[체인대본]
일이 없으면 맑은 마음으로 묵묵히 앉아, 크고 중요한 근본을 몸으로 행하였다.
嘗曰衆人絶少未發時[상왈중인절소미발시] 吾輩靜時[오배정시]
일찍이 말하기를 "대중은 전혀 발현하지 않았을 때와 우리들이 고요한 때는
自謂未發者[자위미발자] 實未爲眞未發也[실미위진미발야]
스스로 아직 밝히지 않은 자라 말하는 것은 실은 참된 미발이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又曰學者之病[우왈학자지벼병] 多在用處未熟[다재용처미숙]
또 말하기를 "학자의 병은 많이 쓰이는 곳에서 익숙하지 못하는 것에 있으니,
吾則自少酬應頗多[오즉자소수응파다] 나는 젊어서부터 수작하고 응대함이 대단히 많았다.
故於此略有得力處[고어차략유득력처] 그러므로 여기에 대략 힘을 얻은 곳이 있다."라고 하였다.
又曰制欲如制敵[우왈제욕여제적]
또 말하기를 "욕심을 제재하기를 敵(적)을 제재하는 것과 같이 하여,
初則血戰而患不勝[초즉혈전이환불승] 처음은 혈전을 하되 이기지 못할까 걱정이더니,
今覺稍不費力爾[금각초불비력이] 지금은 점점 너의 힘을 소모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有問治心之要者[유문치심지요자] 어떤 이가 마음을 다스리는 요점을 물었는데,
答曰莫如主一於此數語[답왈막여주일어차수어]
답에 이르길 "이 몇가지 말씀에 하나같이 주장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可見其用力之深也[가견기용력지심야] 가히 그 힘을 씀에 깊은 것을 볼 수 있다.
嘗與學者[상여학자] 論心氣質之辨[논심기질지변]
일찌기 학자와 더불어 마음과 기질의 분별을 논하였는데,
有曰人之所稟[유왈인지소품] 乃五行至秀之氣[내오행지수지기]
또 말하기를 "사람의 천품은, 이에 오행이 지극히 빼어난 기운인데,
而心又其精英[이심우기정영] 其未發也[기미발야]
마음은 또 그 정예롭고 뛰어나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면
則此精英本然湛一虛明[즉차정영본연잠일허명] 而五性具焉而已[이오성구언이이]
곧 이 정예로운 사람은 본연 그대로 잠시 헛된 밝음을 즐기며 다섯가지 성정을 이미 갖출 뿐이다.
雖其氣質有些渣滓[수기기질유사사재] 비록 그 기질은 조금이나마 찌꺼기가 있으니
自不幹(干)於此際[자불간어차제] 此所以不囿於氣質者也[차소이불유어기질자야]
스스로 주어진 기회에 간여하지 않고, 이 기질이란 것에 얽매이지 않아야하는 바이다.
又曰天地之妙用[우왈천지지묘용] 良能降於人而爲心[양능강어인위심]
또 말하기를 "천지의 신묘한 작용은 어질게 사람에게 내려서 마음을 삼게하니
即所謂神明也[즉소위신명야] 곧 이른바 신의 명령이라 일컫는 바이다.
非人生氣質一定之後[비인생기질일정지후] 始聚而爲心也[시취이위심]
인생의 기질이 한 번 정해진 뒤, 먼저 갖추어 마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今日(曰)清氣聚而虛靈[금일청기취이허령] 濁氣聚而虛靈[탁기취이허령]
지금 말하기를 "맑은 기운이 모여 마음이 신령하나, 탁한 기운이 모여 마음이 신령한것 같으나
則雖強名之曰虛靈[즉수강명지왈허령] 비록 억지로 마음이 신령하다 말하며 이름할지라도
荀苟究其實[구규기실] 終不免有分數[종불면유분수]
진실로 그 실상을 헤아려보면 마침내 나눔이 있음을 면치 못하고,
而明德亦歸於有分數[이명덕역귀어유분수] 공명정대한 덕행 또한 마땅히 분수 있는데로 돌아가게 되니
其以鏡火喩心而謂明無不同者[기이경화유심이위명무부동자]
그 거울과 불로 마음을 깨우쳐 이르되 밝음이 같지 않은 것이 없다하나
只是贊歎虛景耳[지시찬탄허경이] 다만 무릇 헛된 경치를 찬탄하는 것뿐이다.
蓋近世心性之爭[개근세심성지정] 始自湖中諸公[시자호중제공]
대개 근세에 심성의 다툼이 자연히 호중(충청도)의 제공으로부터 시작하여
而聖凡心不同之說성범심부동지설] 最爲吾道之害[최위오도지해]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설이 가장 吾道[오도, 유생들의 도)의 해가 되었다.
故公辨之如此[고공변지여차] 그러므로 공이 바로잡기를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公天分既高[공천분기고]而充養有道[이충양유도]
공은 타고난 재질이 이미 뛰어나고 충실하게 수양하는 도가 넉넉하였다.
故事半功倍[고사반공배] 不勞而得[불로이득] 至其晚年德成[지기만년덕성]
까닭에 일은 반만 하면서도 공은 배가 되어, 수고롭지 아니하고도 얻어, 그 만년에 이르러 덕을 이루어
端最弘毅[단최홍의] 淵慤渾全[연각혼전]
단정하게 정리하여 뜻이 넓고 굳세며, 조용히 성실하며 완전히 온전하였다.
色夷而神定[색이신정] 氣和而言厲[기화이언려]
얼굴빛이 온화하고 정신을 바로잡아, 기운이 화하고 말씀이 엄숙하여,
造次顚沛[조차전폐] 泛應曲當[범응곡당] 自然之中[자연지중] 繩墨井然[승묵정연]
위급하고 중대한 순간에도 적당히 응하며 자세히 대하니, 자연스런 가운데에 승묵(먹 줄)이 정연하였다.
嗚呼[오호] 若公者[약공자] 庶幾乎所謂安且成者歟[서기호소위안차성자여]
오호라! 공과 같은 이는, 바라건대 편안히 논하는 바 또한 성숙한 자에 가깝도다.
公事親至孝[공사친지효] 大夫人晚年[대부인만년] 常寢疾左右服勤[상침질좌우복근]
공이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도하여 대부인 말년에 병석에 누우면 항상 좌우에서 힘들게 봉사하고,
婉容柔聲[완용유성] 若嬰兒然[약영아연] 고운 낮빛과 부드러운 소리로 마치 젖먹이와 같이 하였으며,
飲食醫藥[음식의약] 竭誠營辦[갈성영판] 無或疎闕[무혹소궐]
음식과 의약은 정성을 다해 짓고 갖춤에, 혹시 빠지거나 소홀히 하는 것이 없었다.
與弟閒靜公文欽[여제한정공문흠] 友愛甚篤[우애심독]
아우 한정공 文欽(문흠)과 우애하기를 매우 도탑게 하여
晚猶同居[만유동거] 相對講說[상대강설] 以爲樂[이위락]
말년에도 오히려 함께 살면서 서로 마주해 강의하고 설명하며 즐겁게 하였다.
閒靜公[한정공] 以翊賛入京供職[이익찬입경공직]
한정공이 翊贊(익찬, 세자익위사)가 되어 서율에 들어가 봉직할 때에
公於一日[공어일일] 忽覺悲情[홀각비정] 內集夜不能寐[내집야불능매]
공이 하루는 홀연히 슬픈 감정을 느껴, 안에 모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遂和杜子同谷歌以胎(貽)之[수화두자동곡가이이지]
마침내 杜子(두자미)의 同谷歌(동곡가)를 화답해 남겼다.
閒靜公即棄官歸[한정공즉기관귀] 未幾閒靜公內外俱歿[미기한정공내외구몰]
한정공이 곧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서, 얼마 아니되어 한정공 내외가 다 돌아가시니,
豈情愛之至[기정애지지] 精神感通而然耶[정신감통이연야]
어찌 정과 사랑의 지극함이 정신으로 감동하고 통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閒靜公既歿 公號痛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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