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김시습

嘲二釣叟[조이조수]

돌지둥[宋錫周] 2023. 6. 2. 09:26

嘲二釣叟[조이조수]   金時習[김시습]

두 낚시하는 늙은이를 비웃다.

 

呂望[여망]

風雨蕭蕭拂釣磯[풍우소소불조기] : 바람과 비가 쓸슬히 불어 물가 낚시를 걷우니

渭川魚鳥識忘機[위천어조식망기] : 위천의 새와 물고기는 욕심 잊는것을 아는구나.

如何老作風雲將[여하로작풍운장] : 어찌하여 늙어 일어나 바람과 구름의 장수되어  

終使夷齊餓采薇[종사이제아채미] : 결국 백이 숙제로 하여금 고비 캐다 주리게했나.

風雲[풍운]一作鷹揚[일작응양]

'풍운'을 한 작품에는 '응양'이라 함.

 

 

嚴光[엄광]

桐江江上釣煙波[동강강상조연파] : 동강(엄릉뢰) 강 위에 안개낀 물결에 낚시하며

生計蕭條一短蓑[생계소조일단사] : 살아가는 방편 짧은 도롱이 하나에 쓸쓸하구나.

漢家若無星象動[한가약무성상동] : 한나라 도성에 만약 별자리 움직임 없었다면

千秋定不累完名[천추정불루완명] : 오랜 세월 온전한 평판 허물 바로잡지 못했네.

 

 

太公之佐周室[태공지좌주실]功則大矣[공즉대의]

태공망이 주 왕실을 보좌함 공이 곧 크지만

 

以商世觀之[이상세관지]義不能侔西山[의불능모서산]

상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서산(백이, 숙제)에서 능히 힘쓴게 옳지 못하구려 

 

子陵之去漢帝[자릉지거한제]節則高矣[절즉고의]

엄자릉이 한 광무제 떠남은 절개가 곧 높다지만

 

以漢室觀之[이한실관지]忠不能盡雲臺[충불능지운대]

한나라 황실의 관점에서는 충성은 운대(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놓은 대)를 다하지 못했다.

 

嗚呼[오호]當殷商無道[당은상무도]

오호라 ! 은나라와 상나라의 무도함을 당하여

 

天命雖去[천명수거]人心縱離[인심종리]

천명을 비록 떠났고 사람들 마음 설령 흩어졌지만

 

太公[태공]一商民也[일상민야]

태공망은 하나의 상나라 백성인지라

 

可忍佐異姓誅其君乎[가인좌리성주기군호]

가히 차마 다른 성을 보좌하고 그 임금을 베겠는가.?

 

當莽之亂[당망지란]炎祚已傾[염조이경]

왕망의 난을 당하여 염조(漢高祖[한고조]가 나라를 창건할 적에 상징으로 삼았던

火德[화덕]을 가리키며 곧 한나라의 국운을 의미)가 이미 기울었고

 

光武以雄渾之量[광무이웅혼지랼]誅賊救民[주적구민]欲光復漢室[욕광복한실]

광무제는 웅혼한 기량으로 적을 베고 백성을 구하여 한의 황실을 회복하려 했다.

 

子陵以區區之節[자릉이구구지절]浩然歸去[호연귀거]

엄자릉은 구차한 절개로 써 그림없이 돌아가 버려

 

可忍潔其身[가인결기신]而亂其倫乎[이난기륜호]

가히 참고 그 몸을 깨끗이하며 인륜을 어지럽히겠는가 ?

 

然則太公之就[연즉태공지취]能助周家之業[능조주가지업]

그러나 태공은 등극되어 주나라의 업을 보좌할 수 있었지만

 

不能全君臣之大義[불능전군신지대의]

군신의 대의를 보전할 순 없었고

 

子陵之去[자릉지거]能成光武之大[능성광무지대]

엄자릉은 떠나 광무제의 위대함을 성취시켜줬지만 

 

不能補漢祚之中興[불능보한조지중흥]

능히 한 나라의 중흥을 보필할 순 없었다.

 

屈子所謂明有所不照[굴자소위명유소부조]有所不逮[지유소불체]

굴원이  이르길 임금의 현명함으로도 비추지 못하는 곳이 있고

지혜로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했던 말이

 

信夫[신부] 

믿을 수 있구나.

 

 

 

呂望[여망] : 太公望[태공망], 姜太公[강태공], 본명은 姜尙[강상] 

   渭川[위천, 위수]에서 낚시하다가 주 문왕을 만남.

鷹揚將[응양장] : 매가 하늘로 솟구치 듯 武威[무위]를 자랑하는 장수.

  詩經[시경] 大雅[대아] 大明[대명]에

   "維師尙父[유사상보]時維鷹揚[시유응양] : 이때 태사 尙父[상보]가 마치 매가 날 듯하여,

  涼彼武王[양피무왕]肆伐大商[사벌대상] : 저 무왕 도와서 상 나라를 정벌하니,

  會朝淸明[회조청명] : 會戰[회전]한 그날 아침 청명했도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상보는 바로 70세에 文王[문왕]을 따라 나선 呂尙[여상]을 가리킨다.

嚴光[엄광] : 嚴子陵[엄자릉], 後漢[후한] 사람, 光武帝[광무제]의 친구.

   광무제가 황제가 된 뒤에 變姓名[변성명]하고서 숨어 살았다

   광무제가 엄광을 찾아내어 조정으로 불렀으나 오지 않다가

   세 번을 부른 다음에야 겨우 나왔으나 광무제와 엄광이 함께 잠을 자던 중에

   엄광이 광무제의 배에 다리를 올려 놓았는데 그다음 날 태사가 아뢰기를,

   "객성이 御座[어좌]를 범하였습니다." 하니광무제가 웃으면서,

   "짐이 옛 친구인 엄자릉과 함께 잤을 뿐이다."하였다

   그 뒤 광무제가 조정에 머물러 있기를 권하였으나

   엄광은 浙江省[절강성]에 있는 富春山[부춘산]으로 들어가

   嚴陵瀨[엄릉뢰]라는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며 지냈다後漢書』 83 逸民列傳 嚴光

 

梅月堂詩集卷之二[매월당시집2권] 詩[시] 花草[화초]

1583년 간행본 한국고전번역원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1988

金時習[김시습,1435-1493] : 자는 悦卿[열경].   

  호는 梅月堂[매월당], 東峰[동봉], 碧山淸隠[벽산청은], 贅世翁[췌세옹]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할 때 크게 충격을 받아 실의하여

  머리를 삭발하고 중이 되어 山水間에 방랑하며 절의를 지킴. 

  生六臣의 한 사람. 조선초기의 문인 (소설가).

 

이 시는 두 낚시질하는 늙은이 가운데 하나인 강태공(姜太公)을 놀리면서 지은 풍자시(諷刺詩)이다.

 

쓸쓸히 비바람이 부는 낚시터에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渭水) 주변의 물고기와 새들은 강태공이 세속적 욕망을 잊은 줄 알고 강태공 주변에서 노닐고 있다. 그런데 어쩌자고 노년에 용맹한 장수 되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같은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을 수양산에서 굶어 죽게 하였는가?

 

 

이제신(李濟臣)의 『청강시화(淸江詩話)』에 의하면, “김시습이 낙척 불우하였으나 시문은 매우 고상하였다. 서거정(徐居正)이 일찍이 그를 맞이하여 강태공이 낚시하는 그림을 보여 주며 제화시를 청하자 곧 다음과 같은 시를 써 주었다. ……서거정이 묵묵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그대의 시는 곧 나의 죄안을 밝힌 문건이오.’라고 하였다[金悅卿落拓不遇, 詩文極高. 徐達城嘗一邀致, 出姜太公釣魚圖請題, 卽書一絶云: ‘風雨蕭蕭拂釣磯, 渭川魚鳥識忘機. 如何老作鷹揚將, 空使夷齊餓采薇.’ 達城默然良久曰: ‘子之詩, 吾之罪案也.’].”라고 하여, 서거정(徐居正)의 요청으로 지은 것으로 되어 있고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부에는 한명회(韓明澮)가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고, 『병자록(丙子錄)』에는 권람(權擥)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만나 보지 못하고 벽에 걸린 조어도를 보고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김시습은 강태공(姜太公)의 발자취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강태공을 한명회(韓明澮)나 서거정(徐居正)에, 백이와 숙제를 세조(世祖)에게 희생당한 사육신(死六臣)과 자신 같은 사람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제화시(題畵詩)이지만 역사적 인물인 강태공을 소재로 사육신(死六臣) 사건을 풍자(諷刺)하고 있는 것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106~1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