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免喪後謁李丈 熽[면상후알이장 소]苦勸余以詩[고권여이시] 4-4

돌지둥[宋錫周] 2023. 6. 30. 22:05

免喪後謁李丈 熽[면상후알이장 소]苦勸余以詩[고권여이시] 4-4

云不見子落筆久矣[운불견자락필구의]使其子十三伴宿[사기자십삼반숙]

朴齊家[박제가]

상복입는일을 마친 뒤에 이소 어르신을 뵈었다.

괴로워하는 나에게 시 쓰기를 권하시며

그대가 장난삼아 쓴 시를 보지 못한지 오래 되었다 하시며

그 아들 십삼(유희경)으로 하여금 짝하여 머물게 하셨다. 

 

雪屋漫漫總潑烟[설옥만만총발연] : 멀고 지리하니 눈 내린 집에 활발한 안개 모이고

荒邨一帶卽門前[황촌일대즉문전] : 황폐하고 쓸쓸한 마을 일대는 문 앞에 가깝구나.

參橫月落今何夕[삼횡월락금하석] : 삼성 기울고 달이 지니니 오늘은 어떠한 밤일까 

酒白燈靑似舊年[주백등청사구년] : 술은 깨끗하고 등불 푸른 것이 지난 해와 같구나.

作賦休須皇甫序[작부휴수황보서] : 모름지기 황보의 서문으로 시를 지으려 말게나

著書堪笑國門懸[저서감소국문현] : 지은 책이 나라의 문에 걸린 비웃음을 참아내네.

身將隱矣名安用[신장은의명안용] : 몸을 지켜 숨어 살면서 편안히 힘써 이름내며

絶壑嶙峋擁褐眠[절학린순옹갈명] : 막힌 골짜기 우뚝한지라 베옷 끼고서 잠드네.

 

李熽[이소] : 서자로 생원에 급제, 聖緯[성위] 李喜經[이희경, 1745-?]의 부친.

十三[십삼] : 李喜經[이희경, 1745~?] 의 호(十三齋), 다른 호는 綸菴[윤암], 자는 聖緯[성위],

   아우 李喜明[의희명]과 함께 연암의 문하생이 되었으며, 중국을 다섯 차례나 다녀왔다.

   그가 남긴 《雪岫外史[설수외사]》는 박제가의 《북학의》에 비견될 만한 저술이다.

參橫[삼횡]參星[삼성]저녁별西方七宿[서방칠수]의 하나.

皇甫序[황보서] : 晉[진]의 명사인 皇甫謐[황보밀]의 서문.

   左思[좌사]가 三都賦[삼도부]를 지었는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당시의 명사인 황보밀에게 서문을 받아 붙여 유명해졌고 이 때문에

   洛陽[낙양]의 종이 값이 일시에 폭등했다는 고사.

 

貞蕤閣初集[정유각초집] 詩[시]

朴齊家[박제가 1750- 1805]

 

모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李熽 어른을 만났는데, 시 짓기를 권하자 자신의 의지를 표명한 작품이다. 1,2구에서는 고요함이 깃든 시골 마을의 풍경을 묘사했으며, 3,4구에서는 담박하고 고요함 속에 별이 기울고 달이 지며 푸른 등불에 막걸리까지 갖춘 충만한 정신세계를 드러냈다. 청아한 느낌을 주는 흰 눈이나 푸른 등불, 게다가 별빛과 달빛까지 가득하여 자족할 수 있는 공간이니, 굳이 자신을 세상에 알리려 애쓸 필요가 없다고 5,6구에서 역설했다. 5구의 ‘皇甫序’는 晉의 名士인 皇甫謐의 序文을 말한다. 左思가 <三都賦>를 지었는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당시의 명사인 황보밀에게 서문을 받아 붙여 유명해졌고 이 때문에 洛陽의 종이 값이 일시에 폭등했다는 고사가 있다. 6구의 ‘國門懸’은 呂不韋 관련 고사다. 여불위는 자신의 저서 󰡔呂氏春秋󰡕를 咸陽의 성문에 진열하고 그 위에 천금을 걸어 놓고서 한 글자라도 증감할 수 있는 자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널리 알렸다고 한다. 초정은 이들 고사를 인용하면서, 세속의 명리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는 결국 작품의 전반부에서 묘사한 전원이야말로 삶의 위안처이며 자족할 수 있는 청아한 삶의 공간으로 인식한 결과다.

 

초정에게 전원에서의 삶은 다소 관념적이다. 전원을 번잡한 세속과 대척점에 있는 공간으로 인식했으며, 세속에서의 상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청아탈속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전원에 대한 초정만의 이러한 의식은 벗어날 수 없는 서얼이라는 자신의 신분이나 여타의 상황이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이면에는 불우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러한 불우함을 치유하고 위안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원을 상정했기에, 전원을 은자적 삶의 공간이나 청아탈속의 경지로 인식하고 이를 그대로 시화한 것이다. 󰡔한객건연집󰡕에 수록된 초정의 초기 시 작품은 그의 초기 시집인 󰡔明農草稿󰡕에서 선집한 것이다. ‘明農’이란 농업에 힘을 다하거나 농사일을 권면한다는 의미로, 󰡔書經󰡕<洛誥>에 보인다13). 여기에서도 초정이 젊은 시절 희망했던 삶의 모습이나 전원에 대한 의식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