櫟泉宋先生墓碣銘 4
閒靜公既歿[한정공이몰] 公號痛如不欲生久[공호통지불욕생구]
한정공이 돌아가자 공은 슬프게 부르짖으며 마치 오래 살고 싶지 않은 듯하여
而益甚撫諸孤[이익심무제고] 如己出[여기출]
여러 조카들을 더욱 심히 어루만져 주기를 마치 자기가 낳은 것과 같이 하였고,
婚嫁皆極力資送[혼가개극력자송] 稱意而後己[칭의이후기]
혼인하고 시집 보냄에 모든 힘을 극진히 하여 혼수 재물을 보내고 생각에 맞게 한 뒤에 마쳤다.
推以至於親戚隣里[추이지어친척린리] 친척과 이웃에까지 밀어 주어 이르게 하였다.
各盡其道[각진기도] 睭(賙)窮郵(卹)貧[주궁휼빈] 不問家有無[불문가유무]
각각 그 도를 다하여 궁함은 진휼하고 가난을 구제하여 집이 있고 없는 것을 묻지 아니하고,
有死而貧不能歛者[유사이빈불능렴자] 則脫衣而禭(襚)之[즉탈의이수지]
죽은자가 있어 가난하여 염을 할 수가 없으면, 곧 옷을 벗어서 수의를 하게 하였다.
與鄕人處[여향인처] 由由如也[자유여야] 見有過失[견유과실]
고향 사람과 더불어 머물면서도 편안한 듯하여 과실이 있는 것을 보면
反復教告[반복교고] 改則誠心喜之[개즉성심이지] 不追其既往[불추기기왕]
반복해 가르쳐 알리고, 고치면 곧 성심으로 그를 기뻐하여 그 이미 지나간 일을 쫒지 아니하였다.
以是鄕黨愛敬[이시향당애경] 暴悍化服焉[폭한화복언]
이러므로 시골 마을에서도 사랑하고 공경하고, 사납고 난폭한 자도 감화되어 따랐다.
嘗與蟾村閔公遇洙[상여섬촌민공우수] 讀書於(于)瓶泉[독서어병천]
일찍이 蟾村(섬촌) 閔遇洙(민우수)공과 함께 병천에서 글을 읽을 때
閔公會有疾[민공회유질] 公至誠救護[공지성구호] 纖密委曲[섬밀위곡]
민공이 병이 있어 공이 지성으로 구호하느라 섬세하며 치밀하고 자세하게 소상히 하니
閔公歸語人曰[민공귀어인왈]聖人不過如此[성인불과여차]
민공이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성인도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蓋與楊龜山說一部論語同意也[대여양구산설일부론어동의야]
대개 楊龜山(양구산, 楊時양시)가 논어의 한 부분을 설명한 것과 같은 뜻이었다.
御家衆[어가중] 恩威並行[은위병해] 집안을 다스림에 은혜와 위엄을 아울러 베풀고
分職任事[분직임사] 各有成法[각유성법] 직책을 나누어 일을 맡김이 각각 넉넉한 예법을 이루어
閨門內外[규문내외] 寂無人聲[적무인성] 而衆事自理[이중사자리]
안방 문, 안과 밖에 고요하게 사람의 소리가 없고, 모든 일이 스스로 다스려졌다.
餘(余)嘗問開(閒)靜公[여상문한정공]曰伯氏行三軍則如何[왈백씨행삼군즉여하]
내가 일찍이 한정공에게 물어 말하기를 "백씨가 三軍(삼군)을 다스리시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曰必有紀律[왈필유기률] 蓋其天稟然爾[개기천품연이]
말하기를 반드시 紀律(기율)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타고난 기품이 그러할 뿐이다.
惜乎[석호] 不能究其用也[불능구기용야] 아깝구나! 능히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함이여.
奉先必以誠 [선봉필이성]每定居[매정거] 遵家禮立祠堂[준가례립사당]
선조의 덕업을 받들 때에는 반드시 정성으로 하고, 매양 살 곳을 정함에, 가례에 따라 사당을 세우고
日晨起 [일신기]率子弟參謁[솔자제참알] 享祀必豊潔[향사필풍결]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자제를 거느리고 참여하여 알현하며, 향사에 반드시 풍성하게 깨끗이 하고,
齋戒必如禮[재계필여례] 忌日則終日悲哀[기일즉종일비애]
조상 제사에 몸과 마음 깨끗이 하며 행동을 삼가하여 반드시 예와 같이 하고
제삿날에는 곧 종일토록 슬퍼 서러워하였으며
病東俗不知廟墓輕重之別[병동속부지묘묘경중지별]
동방(우리나라)의 풍속이 사당과 묘소의 가볍고 무거운 구별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병으로 여겼고,
時節必行正祭於家廟[시절필행정제어가묘]
일정한 시기에 반드시 가묘에서 正祭(정제, 4계절 제사)를 행하였고,
墓則只行春秋盛祭[묘즉지행춘추성제] 而正朝端午[이정조단오] 以酒果省掃[이주과성소]
묘지인 즉 다만 봄 가을 성대한 제사를 행하고, 초하루와 단오에는 술과 안주를 가지고 살피고 청소하며
於本宗祀事[어본종사사] 亦必助以時物[역필조이시물] 而躬往將事[이궁왕장사] 至老不懈[지로불해]
일가붙이의 제사일에도 또한 반드시 계절에 나는 물건으로 돕고, 몸소 가서 일을 도와 늙도록 게을리하지 않았다.
尤翁作文正公墓誌 [우암작문정공묘지] 尤翁[우옹, 우암)이 문정공의 묘지를 지으며
有日(曰)孝親刑妻[우왈효친현처] 敎子御下[교자어하] 各得其道[각득기도]
또 말하기를 "어버이께 효하고 아내를 다스리고 자식을 가르치고 아랫사람을 다스림에 각각 그 도를 얻어
倫理克正[윤리극정] 恩義克篤[은의극독] 皆可以爲後世法[개가이위후세법]
윤리가 능히 바르고 은의가 능히 두터워서 모두 가히 후세의 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今以此形容公德美[금이차형용공덕미] 亦可以無愧矣[역가이무괴의]
이제 이것으로 공의 덕과 아름다움을 형용하더라도 또한 가히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始文正先生文集之刊行也[시문정선생문집간행야] 처음에 문정선생 문집이 간행되었을 때에,
因朝令泊促[인조령박촉] 編次多舛誤[편차다천오]
조정의 명령이 조용히 재촉함으로 인해, 편차가 어그러져 그릇됨이 많았는데,
公取而更定之[공취이갱정지] 又就經筵日記[우취경연일기] 공이 취한것을 다시 바로잡고 또 경연일기에서 취하여
抄取其發明經義[발취기발명경의] 係關治體者[계관치체자] 釐爲六卷[이위륙권]
그 경서의 뜻과 발명한 것을 가려 뽑아, 정사에 관계가 있는 것을 정리하여 6권으로 만들어
名以別集[명이별집] 以附于下[이부우하] 별집이라 이름을 짓고 그대로 아래에 붙였다.
於是先生之全體大用[어시선생지전체대용]略備焉[략비언] 이에 선생의 전체 대용이 대략 갖추어졌다.
公嘗謂先賢中[공상위선현중] 求其沉潛篤實和嚴得中[구기침잠독실화엄득중]
공이 일찍이 이르길 "선현들 가운데 그 덕화가 미치고 독실하고 온화하고 엄한 것에 꼭 알맞고
內而不出[내이불출] 傳之無弊 [전지무폐] 속에 두고 내놓지 않으며, 전해서 폐단이 없기를 구한다면,
唯吾先祖爲然[유오선조위연] 오직 우리 선조가 그러하시다."라고 하였으니,
蓋其悅服鑽仰於先生者[개기열복찬앙어산생자] 如此[여차]
대개 마땅히 선생에게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고 학덕을 우러러 떠받는 무리가 이와 같았다.
故自其立心爲學[고자기립심위학] 以至居家立朝[이지거가입조] 持論處事[지론처사]
그러므로 그 마음을 세우고 학문을 하는 것으로부터 집에 거하거나 조정에 올라
持論處事[지론처사] 지론으로 일을 처리함에 이르기까지
殆無一不合於遺規焉[태무일불합어경규언] 반드시 하나라도 끼친 법도에 화합하지 않음이 없었다.
公晚喜讀易[공만희독역] 謂餘日(曰)[위여왈] 공이 늘그막에 주역 읽기를 좋아하여 나에게 일러 말하기를
何由得與君討僻靜處[하유득여군토벽정처] 熟講此書乎[숙강차사호]
"어떻게 하면 그대와 함께 궁벽한 곳을 찾아 고요한 곳에서 이 글을 익히 강론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即此而其暮年進德[즉차이기모년진덕]孶孶不已之意[자자불리지의] 猶可想見[유가상견]
곧 이와 같이 그 늘그막에 덕에 힘쓰며 부지런히 애써서 그치지 않는 뜻을 오히려 생각해 볼 수 있다.
今餘學易未卒[금여학역미졸] 疑晦山積[의회산적] 而質難無所이질난무소]
이제 내 주역 공부를 마치지 못하여 의심쩍고 명백하지 못함이 산더미 같이 쌓였는데도 질문할 곳이 없으니,
每念公前語[매념공전어] 自不覺[자불각]掩卷太息也[엄권태식야]
매양 공의 이전 말씀을 생각하고 스스로 책을 덮고 한 숨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噫[희] 公不喜著述有文集若干卷[공불희저술유뮨집약간권] 藏于家[장우가]
슬프도다! 공이 저술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했는데 문집 약간 권이 있어 집에 감추어 두었다.
配清風金氏[배청풍김씨] 軍資監正道洽女[군자감정도흡여] 不育[불육]
배위는 청풍 김씨로 군자감정 道洽(도흡)의 딸인데, 자손이 없어서
取閒靜公次子時淵爲子[취한정공차자시연위자] 方爲新寧縣監[방위신녕현감]
한정공의 차자 時淵(시연)을 받아들여 아들로 삼았고, 바야흐로 신령현감이 되었다.
側室有三男二女[측실유삼남이녀] 男希淵躍淵履淵皆夭[남희연약연이연개요]
측실에서 3남 2녀가 있는데, 아들 希淵(희연)과 躍淵(약연) 및 履淵(이연)은 모두 일찍 죽었고,
女壻趙成達金希柱[여서조성달김희주] 사위는 趙成達(조성달)과 金希注(김희주)이다.
時淵二男啓翰啓栢[시연이남계한계백] 시연의 두 아들은 啓翰(계한)과 啓栢(계백)이고,
三女洪冕變(燮)金在璿趙萬永其婿也[삼녀홍변변김재선조만영기서야]
3명의 딸은 洪冕燮(홍면섭), 金在璿(김재선), 趙萬永(조만영)이 그 사위이다.
希淵履淵[희연이연] 各有一男一女[각유일남일녀] 희연과 이연에게는 각각 1남 2녀가 있고
趙婿有三男一女[조서유삼남일녀] 錤(鎭)翰錤(鎭)源餘幼[진한진원여유]
조씨 사위에게 3남 1녀가 있는데, 진한과 진원이고, 나머지는 아직 어리다.
銘曰[명왈]姿隣曾閔[자린증민] 學傳家庭[학전가정]
명에 가로되 '자품은 曾子(증자)와 閔子(민자)에 가깝고 학문은 가정에 전했다.
人百己一[인백기일]渾然天成[혼연천성]
남이 백을 함에 자신은 하나를 해서 처음부터 아주 쉽게 저절로 이루어졌다
積久暉吉[적구휘길] 祥雲景星[상운경성]
오래 된 공적 길하게 빛나고, 상서로운 구름이요 상서로운 별이라.
天德王道[천덕왕도] 體立用藏[체립용장]
하늘의 덕이요 임금의 도이며, 몸은 똑바로 서도 베풂은 감춘다.
措之則是[저지즉시] 曷不虞唐[알불우당]
놓아두면 곧 바르게 되니, 어찌 虞唐(우당, 요와 순)이 아니겠는가.
麟見而踣(陪)[기린이복(배)] 時則聖世[시즉성세]
기린을 보고 넘어뜨리니(모시니) 때는 바로 성세로다.
其何如命[기하여명] 道之將廢[도지장폐]
그 어떤 命(명)이기에 도가 장차 무너지고
人亡國瘁[인망국췌] 嗚呼曷芘[오호갈비]
사람은 망하고 나라는 병이 들어 오호라 어찌 덮을까 ?
白首踽踽[백수우우] 靜思寤闢[정사오벽]
흰 머리에 매우 외로우니, 고요히 생각하며 각성하여 넓히네.
詩以宣之[시이선지] 涕濺幽石[체천유석]
시에 의해 널리 알리며 그윽한 돌에 눈물을 뿌리노라.
(추기)
先妣贈貞夫人金氏[선비증정부인김씨] 系出清風[계출청풍]
先妣(선비) 증 정부인 김씨는 세계가 청풍에서 나왔고,
己卯名賢大司成諱湜之後[기묘명현대시성휘식지후] 기묘명현 대사성 휘 湜(식)의 후손이다.
己卯名賢[기묘명현] : 1 519년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신하들
曾祖府院君忠翼公[증조부원군충익공]諱佑明[휘우명] 祖判書貞僖公[조판서정희공]諱錫衍[휘석연]
증조부는 부원군 충익공 휘 佑明(우명)이고, 조부는 판서 정희공 휘 錫衍(석연)이며,
考軍資監正[고군자감정]諱道洽[휘도흡] 妣昌原黃氏[비창원황씨] 安岳郡守諱命錫之女[안악군수휘명석지녀]
부친은 군자감정 휘 道洽(도흡)이고, 어머니는 창원황씨 안악군수 휘 命錫(명석)의 따님이다.
夫人以乙西十一月十七日生[부인이을유십일월십칠일생] 清瑩如氷玉[청영여빙옥]
부인은 을유(1705)년 11월 17일에 태어나 맑고 밝기가 얼음과 옥 같고
性端一誠莊[성단일성장] 自幼動無過誤[자유동무과오] 育於祖母魚夫人[육어조모어부인]
성품이 단정하고 오로지 정성되고 엄하며, 스스로 적게 움직여 과오가 없고, 조모 어부인께서 길러주셨다.
貞僖公子孫甚多[정희공자손심다] 於夫人最鍾愛[어부인최종애] 視若掌中珠[시약장중주]
정희공은 자손이 매우 많았으나 부인께서 가장 사랑을 주었으니 마치 손바닥에 있는 구슬과 같이 하였다.
以故父兄宗族[이고부형종족] 亦莫不愛重[역막불애중] 逈出等夷[형출등이]
이런 까닭으로 부형과 종족들이 또한 사랑으로 중히 하지 않는 이가 없어 나이 비슷한 사람 사에 뛰어났다.
顧夫人愈益畏謹[고부인유외근] 常若執盈[상약집영]
돌아보건대 부인은 더욱 두려워하여 삼가하시고, 항상 넘치는 것 같이 하였다.
年十六[년십륙]歸于我先君[귀우아선군] 나이 16세에 우리 선군에게 시집을 왔는데,
先君德器夙就[선군덕기숙취] 動遵禮法[동준례법]
선군이 덕의 그릇이 일찍이 이루어져 움직임에 예법을 준수하였고
而夫人克配德美[이부인극배덕위] 부인은 능히 덕을 짝하여 아름답게 하니,
雖私室燕處[수사실연처] 相對如賓[상대여빈] 絶不設惰容[절부설타용]
비록 사사로운 집이나 편안항 곳에서도 상대하기를 손님과 같이 하여 끝내 나태한 모양을 보이지 않았다.
祖考性嚴[조고성엄]少許可[소허가] 할아버지가 성품이 엄하시어 잘했다고 칭찬함이 적은데,
至夫人每獎與不已[지부인매장여불이] 言必稱賢婦[언필칭현부]
부인에 이르러서는 매양 칭찬하고 허락하기를 마지아니하여 말마다 반드시 어진 며느리고 일컬었다.
吾家素淸寒[오가소청한] 夫人生長富貴[부인생장부귀]
우리집은 본래 매우 가난한데 부인은 부귀하게 나아 자랐으나
而疏食菜羹[이소식채갱] 安若固有[안약고유]
거친 음식과 나물 국을 본다 부터 편안히하는 것 같이 하였다
其入沃川深峽[기입옥천심협] 生理艱甚 [생리간심]
이미 옥천의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생계가 매우 어려워지자
夫人率婢指闢菜地[부인솔비지벽채지] 手鋤耘治[수서운치]
부인은 종을 거느리고 채소밭을 지시해 개간하고, 손수 호미질해서 김매고 다스리니,
季父開(閒)靜公[계부한정공] 適見之 [적견지]作詩詠其事[작시영기사]
계부(막내 숙부) 한정공께서 마침 이것을 보고 시를 지어 그 사실을 읊어서
宗黨傳之爲美談[종당전지위미담] 일족 무리에서 이것을 전하며 미담으로 삼았다.
祖妣積年沉疾[조비적년침질] 夫人早夜扶護[부인조야부호]
조비께서 여러 해 병을 않았는데. 부인은 새벽이나 밤이나 도와 보위하며
食飲必時[식음필시] 藥餌必親[약이필친] 반드시 제 때에 먹고 마시게하고 친히 약이 되는 음식을 드리고
未嘗敢斯須離側[미상감사수리측] 일찍이 감히 잠시라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處妯娌怡愉若同己[처축리이유약동기] 御家衆[어가중]井井如治朝[정정여치조]
동서들이 화하여 동기간과 같이 하고, 집안의 식솔들을 다스림에 정연하게 조정을 다스리듯 하니,
人皆敬服[인개경복] 庭無間言[정무간언]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고 복종하여 가정에 이간질하는 말이 없었다.
家雖貧[가수빈]不以有無關先君[불위유무간선군]
집은 비록 가난하였으나 있고 없는 것으로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관계하지 아니하였고,
先君喜施與[선구희시여] 窮無以歛者[궁무이렴자] 輒解衣禭(襚)之[해의수지]
선군은 베풀기를 좋아하시여, 곤궁하여 염을 할 수 없는 자에게 ,옷을 벗어 수의를 하게 하니,
而夫人將順之不暇[이부인장순지불가] 少無慳惜意[소무간석의]
부인은 이것을 따르고 순종하여 조금도 아까워하는 생각이 없었다.
至先君喪[지선군상]篋無餘衣[협무여의] 見者感歎[견자감탄]
선군의 상사에 이르러서 광주리에 남은 옷이 없으니 보는 이가 감탄하였다.
不孝釁孽[불효흔얼] 早喪本生考妣[조상본생고비] 而姊妹弟兄 [이자매제형]皆鞠于夫人[개국우부인]
불효한 죄지은 자식으로, 일찍이 본 생가의 부모를 여의고 .자매 형제가 모두 부인에게 길러졌는데,
夫人撫愛深摯[부인무애심지] 顧復之恩[고복지은]
부인은 귀여워 사랑하기를 깊고 도탑게, 늘 돌보시는 은혜와,
義方之敎[의방지교]無間己出[무간지출]
옳은 방법으로 가르쳐 자기가 낳은 것과 다름이 없이 하였고,
先君晚無子[선군만무자] 置副室[치부실] 夫人待之[부인대지] 一出於誠[일출어성]
선군께서 늘그막에 아들이 없어 부실을 두었으나, 부인은 그를 대접하기를 한결같이 정성으로 대하고
至有過亦誨責不少假也[역회책불소가야] 허물이 있음에도 또한 가르치고 꾸짖기를 조금도 틀리지 않게 하였다.
時淵生晚不孝[시연생만불효] 凡夫人之平日懿德至行[범부인지평일의덕지행] 百不紀一[백불기일]
시연이 늦게 태어나 불효하여 무룻 부인의 평소의 뛰어난 덕행과 지극한 행동을 백의 한 가지도 적지 못하고,
而惟存爲搢紳家所景仰[이유존위진신가소경앙]
오직 搢紳家(진신가, 사대부 집안)에 덕을 사모해 우러르는 바가 되었으며,
歿爲宗黨間所傳頌[몰위종당간소전송] 죽어서는 종족 사이에서 전하여 기리는 바가 되었고,
一則曰女中君子[일즉왈여중군자]一則曰閨門模楷[일즉왈규문모해]
한편으로는 여자 중의 군자이고, 한편으로는 규문의 모범이 되었으니
則夫人之素所存[즉부인지소소존] 槩可見矣[개가견의]
곧 부인께서 평소의 생각하는 바와 풍채를 가히 볼 수 있다.
夫人以壬子九月二十日棄世[부인니임자구월이십일기세] 享年八十有八[향년팔십유팔]
부인은 임자(1792)년 9월 20일에 세상을 버리시니 향년이 88세였다.
是年十二月[시년십이월] 遷先君墓[천선군묘] 이해 12월에 선군의 산소를 옮겨
奉窆于燕歧葛山負艮之原[봉폄우연기갈산부간지원] 而合祔如禮[이합부여래]
연기군 갈산리 간방(동북)의 언덕에 받들어 모시고 합장하여 부치기를 예와 같이 하였다.
先君姓諱[선군성휘]已見原誌[이견원지] 선군의 성과 휘는 이미 原誌(원지)에 나타나 있고,
正宗丙申[정종병신] 特命藏裕昆錄板於元陵退壙[특명장유곤록판어원릉퇴광]
정조 병신(1776)년에 특명으로 裕昆錄(유곤록) 판을 원릉(영조릉) 퇴광에 보관하라고 하여
丙辰因嗣孫[병신인사손]錄用遣禮官[녹용견례관] 賜祭於家廟[사제우가묘]
병진(1796)년에 嗣孫(사손, 대를 이을 손자)가 기록한 것을 가지고 예관을 보내어 가묘에 제사하게 하였고,
當宁甲子[당저갑자] 因山林李都憲直輔疏請[인산림이도헌직보소청]
당시 임금(순조) 갑자(1804)년에 산림 李都憲(이도헌) 直輔(직보) 임금께 알려 청하여
命贈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成均館祭酒五衛部地府都摠管[명증이조판서겸지의금부사성균관제주오위부지부도총관]
'증이조판서겸 지의금부사 성균관제주 오위도총부도총관'에 명하고
諡文元[호문원] 夫人從贈焉[부인종증언] 시호는 문원이고 부인도 따라서 증직되었다.
嗚呼痛哉[오호통재] 오호 애통하구나 !
今以鹿門任公所撰墓誌 顯刻 [금이녹문임공소찬묘지현각] 而使啓翰書之[이사계한(간)서지]
이제 鹿門 任公(녹문 임공)이 지은 묘지를 현각하고 啓翰(계한)으로 하여금 쓰게 하노라.
時淵牧使[시연목사] 啓翰以大臣薦[계한이대신천] 授敎官[수교관]
시연은 목사이고, 계한은 대신의 추천으로 교관에 제수되었으며,
洪冕變校理[홍면섭교리] 趙萬永進士[조만영진사] 洪冕燮(홍면섭)은 교리이고, 趙萬永(조만영)은 진사이며,
希淵男啓禾[희연남계화] 女李在豊[여이재풍] 희연의 아들은 啓禾(계화)이고, 사위는 李在豊(이재풍)이다.
履淵男啓采[이연남계채] 女金翊淳[여김익순] 李淵(이연)의 아들은 啓采(계채)이고, 사위는 金翊淳(김익순)이고,
趙成逵男鎮幹[조성규남진간] 女李魯恆[여이노항] 趙成逵(조성규)의 아들은 鎭幹(진간) 이고, 딸은 李魯恒(이노항)이다.
內外子孫[내외자손] 多不盡錄[다불진록] 내외 자손이 많아 모두 기록하지 못한다.
不肖男時淵[불초남시연] 泣血謹記[읍혈근기]. 불초 남 시연은 읍혈하면서 삼가 기록한다.
崇禎紀元後[숭정기원후]百六十二年[백육십이년]丙寅[병인1806년]月[월] 日[일] 立[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