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雨連宵춘우련소]氷盡水生[빙진수생]欣然賦之[흔연부지]
蔡濟恭[채제공]
봄비가 밤이 새도록 내려 얼음이 다 풀리며 물이 되어 흐르기에
흐뭇한 마음으로 시를 짓다.
花嶺蒼蒼雨氣多[화령창창우기다] : 아극히 먼 花山[화산] 고개 비 올 기미 늘어나고
隨風容易濕庭柯[수풍용이습정가] : 용이하게 따르는 바람에 뜰의 가지는 축축하네.
消融萬壑全冬雪[소융만학전동설] : 많은 골짜기에 온전했던 겨울 눈 녹아 사라지고
生動三湖一夜波[생동삼호일야파] : 세 호수의 하룻 밤의 물결이 생기있게 움직이네.
白鳥影涵明鏡立[백조영함명경립] : 흰 물새는 그림자 잠기에 맑은 거울속에 서 있고
靑魚船入暮雲和[청어선입모운화] : 푸른빛 물고기 배에 들며 저무는 구름 화답하네.
今朝試覔春消息[금조시멱춘소깃] : 오늘 아침에 봄 소식을 시험삼아 찾아보니
嫰艾纖楊共一坡[눈애섬양공일파] : 어린 쑥과 가는 버들이 하나의 언덕에 함께하네.
庚戌[경술]上以第四句命題[상이제4구명제]試華城儒生[시화성유생]
경술(1790)년에 상께서 제4구로 詩題[시제]를 명하여
華城[화성]의 儒生[유생]을 시험하게 하였다.
시에서 경술년은 1790년(정조14)인데,
이는 번암 채제공의 착오인 듯 싶습니다 !
아마 계축년(1793)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일성록》 정조 17년 2월 14일 기사를 보면, 정조가
"生動三湖一夜波[생동삼호일야피] : 삼호의 한밤중 물결이 생동하게 하네."를 시제로 삼아
留守[유수] 채제공에게 내려보내며 수원의 유생들을 試取[시취]하게 한 내용이 나옵니다.
정조는 1789년(정조 13)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永祐園[영우원]을
수백 년간 수원도호부가 있던 花山[화산]으로 옮겨 顯隆園[현륭원]이라 改名[개명]하고
수원 도읍을 새 장소인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옮기도록 하였다.
그리고 수원부로 부르던 고을 명칭을 華城[화성]으로 고쳐 부르도록 하였다.
樊巖先生集卷之十六[번암선생집16권] 詩[시]
蔡濟恭[채제공, 1720-1799] : 자는 伯規[백규], 호는 樊巖[번암], 樊翁[번옹].
獨相[독상으로도 유명, 곧 좌의정 우의정 없이 홀로 국정을 살핌.
1793-1796까지 수원화성 축조를 완성.
영조는 죽기 얼마 전 정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와 너에게 아버지와 아들로써의 은혜를 온전하게 해 준 사람이 채재공이다.
나에게는 純臣[순신]이지만, 너에게는 忠臣[충신]이다. 너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與猶堂全書[여유당전서] 제 1집 17권 樊翁遺事[번옹유사]
영조는 정조의 뒤를 봐줄 후견인으로 채제공을 지목한 것이다.
영조는 또한 사도세자에 대한 처분을 후회하는 내용을 담은
친필 비밀문서 〈金滕(금등)〉의 존재를 정조와 채제공에게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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